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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수 칼럼] 눈새기꽃, 매화, 수선화 - 경북신문
겨우내 몸과 마음을 움츠리며 새봄을 기다렸다. 설상가상 창궐하는 역병(코로나 19) 때문에 오랫동안 지칠 대로 지쳐 새봄에 대한 열망이 이다지 절실해지는 걸까. 더구나 입춘과 우수가 지나면서 올해의 새봄은 만물이 새롭게 생동하듯 따스하게 다시 잃어버린 일상을 되찾게 되고, 코로나바이러스가 물러나거나 숙지는 봄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해진다. 그러나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돼 답답하기 그지없다.   어제는 무거운 마음을 추스르며 아무도 없는 산길을 홀로 걸었다. 쌀쌀한 날씨였지만 봄의 기미를 붙들어 보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얼음 사이를 비집고 피어난 몇 송이 노란 꽃과 마주치는 순간 불현듯 마음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어느 시인이 "산골짜기 얼음이 녹기도 전에/황금빛 술잔을 피워 올리는" 꽃이라고 그린 바 있는 그 눈새기꽃이었다.   복수초, 얼음새꽃, 복풀, 원일초라고도 불리는 이 꽃은 봄꽃들 가운데 가장 먼저 얼음이나 눈더미 사이를 비집고 피어나는 봄의 전령이다. 새해 들어 앞장서서 꽃을 피우기 때문에 원일초라고 불리며 복을 거느리고 피어난다고 복풀이라고 하겠지만, 꽃말도 `영원한 행복`이라 엄혹한 겨울나기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널리 사랑받는 것 같다.   새봄의 전령은 눈새기꽃뿐 아니다. 옛 선비들은 입춘 무렵부터 피는 매화를 각별히 좋아했다. 신흠은 시 `야언(野言)`에서 "매화는 일생을 추워도 그 향을 팔지 않는다"고 했다. 선비들은 신흠의 시에서처럼 매화를 보며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쉽게 타협하거나 굽히지 않겠다는 정신을 가다듬었을 것으로 보인다.   매화를 `매형(梅兄)`이라 했고 유언조차 `저 매화나무에 물을 줘라`고 했던 퇴계 이황은 매화를 볼 때마다 언제 어디서나 옥과 눈처럼 맑고 참됨을 잘 간직하라는 당부를 들으며 외로움을 달랬던 모양이다. `내 평생 즐겨함이 많지만 매화를 혹독하리만큼 사랑한다`고도 했던 퇴계는 매화를 주제로 많은 시를 썼는데 그 백미는 매화와 나눈 문답 시다.   그는 "고맙게도 그대 매화 나의 외로움 함께하니/나그네 쓸쓸해도 꿈만은 향기롭다네/귀향길 그대와 함께 못 가 한스럽지만/서울 세속에서도 고운 자태 간직하게나"(`한성의 집에 있는 분재 매화와 주고받다`)라고 노래했으며, 매화의 답을 "듣건대 선생도 우리처럼 외롭다 하니/그대가 돌아온 후 향기를 피우리라/바라건대 그대 언제 어디서나/옥과 눈처럼 맑고 참됨 잘 간직하소서"(같은 시)라고 그리고 있다. 조선 성리학의 근본을 이룬 성현이 외로움 속에서 분재 매화와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선연하게 떠올라 있는 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눈새기꽃이나 매화보다 수선화를 더욱 사랑하고 높이 예찬했던 성현도 있다. 그가 바로 `세한도`로도 유명한 추사 김정희다.   "한 점 찬 마음처럼 늘어진 둥근 꽃/그윽하고 담담한 기품은 냉철하고 준수하구나/매화가 고상하다지만 뜰을 벗어나지 못하는데/맑은 물에서 진실로 해탈한 신선을 보는구나" (김정희의 `수선화`)  이 시에게 읽게 되듯이, 추사는 담장 안이나 사랑방에서 귀한 대접을 받으며 꽃을 피우는 매화보다 길가에 야생화처럼 피는 수선화를 귀하게 여겼으며 이 꽃을 통해 해탈한 신선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 당시 육지 사람들에게는 중국에 다녀오는 사람들에게 알뿌리를 겨우 얻어 키울 만큼 귀했던 수선화가 유배 생활을 하는 제주에서는 흔해 푸대접을 받는 걸 안타까워하면서 쓴 시로 알려지지만, 그의 수선화 사랑은 시사하는 바도 적지 않다. 구근식물인 수선화는 생명력이 강인해 꽃이 진 뒤에도 한 알의 구근이 80년 가까이 산다고 하지 않는가.  서양에서는 수선화의 꽃말이 `조건 없는 사랑`과 `부활`로 알려져 있다. 추사가 당시 수선화의 꽃말을 알았을 리 없지만, 제주 유배 생활에서 간절했던 `부활`에의 심경이 시 `수선화`에 오롯이 투사돼 있다고 봐도 좋을 듯하다.   산길을 내려오면서 한동안 눈새기꽃에 마음 붙들려 있기도 했으며, 매화를 각별하게 사랑했던 퇴계와 수선화에 자신의 처지를 투사해 예찬했던 추사의 고매한 정신을 떠올려 본 것은 황금빛 새봄에 대한 기대감 때문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즐겨찾기+ 최종편집:2022-03-03 오후 09:09:55 회원가입기사쓰기구독신청지면보기전체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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