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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형숙 문화칼럼] 말(言)의 힘 - 경북신문
어린애같은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산책길에 나무 위에서 새들이 재재거리며 지저귀는 소리를 들을 때, 호수 위 청둥오리들 무리에 하얀 몸에 유독 머리만 검은 오리떼들이 섞여서 헤엄치는 모습을 볼 때, `얘, 너는 이름이 뭐니?` 하고 물어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나는 가끔 한다. 새들과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면, 그들이 날아온 먼 여행길의 이야기를 들으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그러나 아쉽게도 그건 나의 상상 속에서나 가능할 일이다. 왜냐하면 말은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특성이자 선물이니까.   인간은 말, 즉 언어(言語)를 가졌기에 타인의 생각을 공유할 수도 있고 나의 생각을 전달해줄 수도 있다. 또 언어를 통해서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줄 수도 있다. 그런 과정에서 공통적인 사실이나 생각들은 지식과 지혜가 되고 그것들을 문자 이전에는 지혜로운 이의 말로써, 문자 이후에는 글로써 다음 세대에 전할 수 있었고, 그 힘으로 문명을 꽃피웠으며 더 나아가 오늘날 인간은 우주로까지 활동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대개 일상 속 언어생활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기에 우리는 말의 소중함이나 말의 힘을 염두에 두지 않고 주고받는다. 일전에 20대부터 60대까지의 다양한 연령층이 모둠을 이루어 공부하는 모임에 참가한 일이 있다. 주로 케이스스터디를 해 와서 서로 토론하고 생각을 나누는 진행방식이었는데, 20대 모둠원의 자료 속에 등장하는 20대만의 은어나 줄임말이 종종 5,60대 모둠원들에게는 낯선 언어가 되어서 설명을 요구하게 되는 웃지 못할 일이 종종 있었다. `우리말인데도 설명이 필요해`하며 같이 웃어 넘겼지만 시사하는 점이 여럿 있었다.  옛 사람들은 사람을 고를 때 `신언서판(身言書判)`을 기준으로 삼았다. 즉 몸이 풍기는 진정한 의미의 풍모, 이치에 맞고 올바른 말하기, 글씨에 나타나는 인격, 사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이 그 네 가지이다. 이중에 말(言)이 앞자리에 있는 것은 그만큼 말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리라. 즉 경박하지 않고 삿되지 않으며 사실은 사실대로, 생각은 생각대로 장식하거나 부풀리는 등의 군더더기를 붙이지 않고 말하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속담에는 말과 관련된 속담이 아주 많다. `말 많은 집은 장맛도 쓰다`,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해라`,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 `혀 아래 도끼 들었다`, `길은 갈 탓 말은 할 탓` 등 유독 말과 관련된 속담이 많은 것도 그만큼 말의 무게를 중하게 여겼기 때문이었다.   말을 주고받는다는 것은 생각을 주고받는 것이다. 나의 언어는 내가 사유(思惟)한 것을 밖으로 드러내 묘사한 것이고 너의 언어를 통해서 나는 너의 생각을 알게 된다. 험한 말은 생각이 거칠고 조야(粗野)함을 밖으로 드러내지만 바르고 이해하기 쉬운 말은 머릿속 생각이 단정하고 정리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말은 얼이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라 하지 않는가.   나아가 언어는 단순히 현실을 묘사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현실을 창조하기도 한다. 칼 야스퍼스는 말의 창조력을 `말이 스스로를 드러내고 밝히고 또한 운동한다`라고 했다. 말에 의해서 개념이 드러나고 명료하게 되며 또 다른 개념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새 정권을 꾸릴 인물을 뽑을 대선이 이제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언론을 통해 접하는 정치권의 언어들은 듣기 민망할 정도로 다듬어지지 못하고 조야하다. 조야하기만 한 게 아니라 거의 막말 수준이다. `망나니의 칼춤`이니 `기생충`이니 `파시스트`니 하는 말로 상대를 비방하는 것이 일상화되다시피 하다. 서로 질세라 험한 말을 주고받는 것은 그 말을 하는 이들의 정신이 험하고 조야함을 반영하는 듯해서 보기가 안타깝다.   국민을 대변하고 국민을 이끌어갈 정치인은 나름의 품격을 가져야 하지 않는가? 품격 있는 정치가 되어야 품격 있는 나라를 만들어나가지 않겠는가?   인간는 언어를 통해 세계를 구성하고 창조해 나간다고 한다. 그들이 품격 있고 발전적인 정신임을 믿고 신뢰할 수 있을 언어를 사용하면서 부디 좀 더 나은 세계, 좀 더 바른 세계를 만들어 나가기를 간절히 바랄뿐이다.
즐겨찾기+ 최종편집:2022-03-03 오후 09:09:55 회원가입기사쓰기구독신청지면보기전체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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