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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형숙 문화칼럼] `설` 수난기 - 경북신문
혹시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셨나요? 아마 연배가 좀 되신 분들은 이 명칭을 잘 알고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나 또한 어릴 적 이런 이름으로 설날을 보낸 적이 한동안 있었으니까. `민속의 날`은 `설날`을 어거지로 다르게 부른 명칭이었다.   민속의 날이라고 불리기 전에는 구정(舊正)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지만 휴일은 아니어서 설날 차례를 지낸 후 억지 걸음으로 학교에 가던 기억도 떠오른다. 그만큼 양력 1월1일인 신정(新正)에 밀린 설날은 푸대접을 받았다. 설 연휴가 3,4일씩 되어 귀성객들 행렬은 고향으로, 또 어떤 이들은 그 기간을 이용하여 여행도 하는 등 명절이 명절다운 요즈음과는 크게 격세지감이 든다.  대표적인 민족의 명절인 우리의 설날이 이런저런 이름으로 불리게 된 데는 까닭이 있었다. 농업을 기반으로 했던 전통사회에서는 음력 역법에 모든 절기를 맞추었다. 그 24절기 중에서 시간적으로 가장 먼저 오는 새해 새달의 첫날을 `설`, 또는 `설날`이라고 하였다. `설`이라는 이름은 묵은 해를 보내고 새로 맞는 낯선 날이라는 의미로 `(낯)설다`에서 유래했을 거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또 다른 유래로는 나이, 해(歲)를 의미하는 `살`에서 왔다고도 한다.   이름이 어디에서 왔든 설은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명절로 이 날은 깨끗한 새옷으로 갈아입고 조상들께 차례를 지낸 후에 집안 어른들을 찾아 세배를 드리고 서로 평소에 원하던 것들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자네 올해는 떡두꺼비 같은 아이를 얻었다지`, `올해는 직장에서 자리가 더 높아졌다지`처럼 완료형의 덕담을 주고받았다. 7세기 중국의 `수서(隋書)`나 `구당서(舊唐書)`같은 역사서에 이미 신라인들이 설을 지내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설은 연원이 아주 오래된 우리 민족의 명절이다.  하지만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인 1896년에 일본의 요구로 서양식 역법인 태양력을 채택하면서 양력 1월1일을 어거지로 `설`이라고 부르게 하고 우리의 설날은 `구식 설날`이라는 의미로 `구정(舊正)`이라고 불렀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모든 명절과 기념일을 양력으로, 완전한 태양력을 실시하고 있어서 조선에 대해서도 음력을 폐지하고 양력으로 역법을 바꾸도록 요구한 것은 효율적인 식민지 지배를 준비하는 과정의 하나였다.   그러나 대다수의 우리 국민은 여전히 음력 설을 쇠는 전통을 이어 갔고 그것은 일제가 빼앗으려는 우리 민족의 주권을 지키고자 하는 무언의 저항이기도 했다. 설의 전통을 없애려는 온갖 규제와 방침에도 불구하고 음력 설을 쇠는 전통이 없어지지 않자 일제는 강제로 떡방앗간의 조업을 금지해서 떡국을 만들지 못하도록 하고 설빔을 입은 아이들에게 먹물을 뿌리기도 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국가기록원 기록)   광복이 되었어도 설의 위상은 여전히 복구되지 못했다. 당시의 이승만 대통령은 서구적 근대화를 신봉하여 태양력을 일상화하도록 하여 신정의 3일간을 설 연휴로 정했다. 당시의 정책은 음력설을 타파해야 할 구습(舊習)으로 치부하였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음력으로 설을 쇠는 풍습을 버리지 않았다.   이런 정책은 1970년대가 되어서도 여전했다. 새마을운동 정신을 강조하며 이중과세를 하지 않고 신정을 쇠도록 강요했고 1975년에는 석가탄신일과 어린이날을 공휴일로 추가 지정하면서도 설은 공휴일에서 제외했다. 1985년에 와서야 설을 공휴일로 지정하자는 여론이 대두되었지만 아직은 신정을 설 연휴로 두고 음력 설에 `민속의 날`이라는 어정쩡한 이름을 붙이고 하루 공휴일로 정했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인 1989년에 이르러서야 `설`이라는 본래의 이름을 찾았고 설과 추석에 3일씩 연휴를 정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수난 아닌 수난을 겪고서야 온전한 `설`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권력자들은 가벼이 생각한 전통 문화의 정신을 체화(體化)시켜 온 민초(民草)들 덕분이었다. 우리 조상들의 설은 설날 하루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월대보름까지 이어지는 축제였다.   농삿일을 시작하는 2월이 오기 전, 정초부터 보름 동안을 축제처럼 지내면서 아이들은 널뛰기, 연날리기, 쥐불놀이 같은 놀이를 즐기고 어른들은 늦은 세배나 덕담으로 서로에게 희망을 주고 마을의 안녕과 단결을 기원했다. 설을 생활과 밀착시켜서 즐기던 우리 민족이기에 어떤 수난을 받았어도 설을 지켜낼 수 있었을 것이다. 며칠 후로 다가온 설날 아침 차례 때, 면면히 전통을 지켜온 우리 옛사람들을 추모하는 시간도 잠시 가져봐야겠다.
즐겨찾기+ 최종편집:2022-03-03 오후 09:09:55 회원가입기사쓰기구독신청지면보기전체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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