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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특별기고] 교사(巧詐)는 졸성(拙誠) 보다 못하다 - 경북신문
옛날 중국 노(魯)나라의 대신인 맹손(孟孫)이라는 사람이 사냥을 나갔다가 사냥터에서 어린 새끼사슴을 한 마리 사로잡게 되었다.   진서파에게 그 유록(幼鹿)을 마차에 태워 돌아가게 하였다. 그런데 그것을 바라본 어미 사슴이 눈물을 흘리면서 마차를 뒤 따라 오고 있기에, 그 광경을 목격한 진서파는 사슴의 모성애에 감격한 나머지 어린 사슴을 그만 놓아 주고 말았다. 맹손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던 것이다.  집에 돌아 온 맹손이 진서파에게 어린 새끼사슴을 데려오라 했다. 진서파는 맹손에게 "어미 사슴이 눈물을 흘리며 뒤 따라 오는 것이 너무도 불쌍해서 놓아 주었습니다"라고 대답 하였다.   그 말을 들은 맹손은 크게 노하여 진서파를 집에서 쫓아내고 말았다. 진서파는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졸지에 추방을 당했던 것이다. 어미 사슴이 그의 어린 새끼를 구하기 위해 눈물을 흘리며 뒤 따라 오는 모습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선의(善意)가 발하였던 것이다. 새끼사슴은 전서파의 졸성(拙誠)으로 인해 다행스럽게 어미 곁으로 가게 되었던 것이다. 맹손은 진서파를 추방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진서파의 선의지(善意志)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래서 그 후 3개월이 지난 다음에 다시 그를 불러들여서 자기의 아들을 돌보게 하였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지켜 본 한 측근이 맹손에게 "지난번에는 진서파를 추방하였는데, 지금 다시 오게 하여 아드님을 돌보게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하고 물었다.  그 말을 들은 맹손은, "진서파가 새끼사슴에게까지 그 착한 마음이 미치는 사람이라면 내 아들에게도 그 착한 마음이 미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생각되어 다시 오게 한 것이라 했다.   이상은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것은 한비자가 춘추시대에 악양(樂羊)이라는 장군이 중용(重用)되기 위하여 충성을 위장했던 이야기와 진서파의 사슴이야기를 대비시켜서 `악양의 교사(巧詐) 보다는 진서파의 졸성(拙誠)이 낫다`는 것으로, 교묘한 거짓은 서투른 성실 보다 못하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악양은 아들을 삶은 국물을 태연하게 마시며 중용(重用)되기 위하여 충성을 위장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악양은 중용되지 못하였으니 결국 교사는 졸성보다 못하게 된 것이다.   원래의 본체(raw materials)는 가공이 되지 않아서 외양이 가공된 것 보다 보기에는 아름답지 않다. 그래서 호감이 가도록 정성을 다해 잘 도야(陶冶)하고 아름답게 채색하면 시각적 매력을 끌 수 있다.   인간도 태어날 때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그 기능이 볼품없는 비현실적 상태로 태어난다. 여타(餘他) 동물은 어미로부터 태어나든지, 알에서 깨어 나오면 그 즉시 사람보다 현실적 기능이 우수하다. 그렇지만 인간은 성숙한 사람들로부터 양육과 보육을 받으면 생득적 잠재능력을 잘 발현하여 만물을 능가하는 참 인간다운 모습으로 변용된다.   이때의 참 모습은 가식과 위장에 의한 모습이 아니다. 그렇지만 성장발달의 과정에서 잘못 길들어지면 그 순수성이 왜곡(歪曲)되어 비인간화로 포장되기 쉽다. 그 과정이 잘못될 경우 거짓을 교묘하게 포장하여 참과 거짓의 경계를 흐리게 하고, 마치 참인 것처럼 설파하여 목표달성행동을 예사로 하는 비인간적인 모습을 보이게 되어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거짓은 아무리 중첩 위장을 한다할지라도 지성인은 그 내면의 거짓을 참이라고 하지 않는 것이다.   오늘날 정치권에서 보여주는 것 가운데, 내면에 감추어졌던 거짓이 조사자로부터 폭로되어 인격적 손상을 당하는 사례들이 있음을 볼 때 선량한 국인들은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판단하기 어려운 입장이지만, 한비자의 교사는 졸성보다 못하다는 것을 생각나게 한다.   그리고 한비자는 인간이 지닌 비정(非情)과 상황은 시시각각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선의(善意)도 언젠가는 악의로 전환될 수 있다면서 이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하였으니, 명현의 말씀은 비록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불후의 아름다운 금과옥조(金科玉條)로 다가오는 것 같다.
즐겨찾기+ 최종편집:2022-03-03 오후 09:09:55 회원가입기사쓰기구독신청지면보기전체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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