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기에 역사적으로 이념 편향이 가장 심했던 시기가 중세기(中世紀)로, 당시 지구상 대부분의 나라들이 국교(國敎)를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어떤 샤머니즘적 주술 신앙을 통치이념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에 오직 특정 종교의 율법이나 미신이 세상을 지배, 개인적인 사상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았던 시기로 보인다.　 따라서 우리는 당시를 중세암흑기(中世暗黑期)라 부르는 것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인류를 암흑기에서 벗어나게 해준 것은, 당시 전 세계 인구 거의 삼분의 일을 몰살시켜버린 흑사병의 창궐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그때 특히 유럽지역에 피해가 컸던 이유는, 지형상 많은 나라들이 서로 국경을 맞대고 있었던 탓도 있었지만, 당시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이 교황의 영향권 아래 기독교 교리를 통치 이념으로 하고 있는 신정국가로써,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질에 대해 과학적, 합리적 대처를 하기 보다는 오로지 신앙에 의지하여 재난을 피해보려는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만 몰려들게 되었고, 그것이 바로 감염을 더욱 크게 확산시키는 원인이 되었다는 설이다.　 성직자나 귀족들을 제외한 대다수 서민들이 문맹(文盲)이었던 시대였지만, 죄 없는 어린아이들까지 가리지 않고 처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과연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그러니까 결코 자애롭지 못해 보이는 신(神), 인간들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기는커녕 교회로 피신한 그 많은 사람들이 몰살되는 광경을 목도하며 아마 사람들은 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를 가지지 않을 수 없었을 터이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페스트 팬데믹 이후 좀 더 합리적 사고를 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바로 `르네상스`라는 새로운 유럽문화를 태동시키면서 근대 과학문명의 초석을 놓게 된다. 　 드디어 인간의 존엄성을 자각한 상식의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상식(常識)이 common sense로 번역되듯이, 상식이란 인간의 합리성에 바탕한 보편타당한 생각과 판단을 의미하는 것으로, 인간이 제정한 그 어떤 성문법(成文法)보다 상위의 개념이기 때문에 우리는 흔히 대중이 납득할 수 없는 주장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에 대해 상식적이지 않다고 힐난하는 것이며, 상식에 위배되는 법을 곧 악법(惡法)이라 칭한다.　 21세기 현재 우리나라 국민은 문맹율(文盲率)이 제로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며, 개발도상국을 벗어나자 마자 갑자기 세계 10대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서게 되었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이루어진 시민혁명으로 새로운 민주정권을 탄생시켰으며, 전 세계인들이 한국의 문화를 사랑하게 만들었고, 이제 `메이드인 코리아`는 세계인들이 선호하는 상표일 뿐만 아니라, 그 혼란스러운 코로나 팬데믹 상황도 가장 모범적으로 극복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코리아임을 외신들이 입증한다.　 그러나 문제는 고도성장의 부작용으로 탄생한 양극화, 소위 기득권과 비 기득권의 갈등으로 빚어지고 있는 몰상식이 한 순간에 공든 탑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불안함이다. 인간의 이성(理性)이 상식을 만들지만, 인간의 감성(感性)은 그다지 상식적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가진 감성이 자칫 몰상식을 만들 수 있음을 자각해야 하지 않을까? 　 기득권 지키기에만 혈안이 된 사람들의 농간에 의해 현재 우리는 전혀 국격(國格)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들에게 나라를 맡기려는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가 중세 암흑시대의 신정국가(神政國家)가 아닌 다음에야 현대 정치판에 어떻게 무속이 등장하고 주술이 횡행할 수 있다는 것인가? 　 사실 전혀 믿고 싶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국민이 상식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면 우리는 선진국의 문지방을 넘자마자 몰상식의 시대 야만의 시대를 다시 체험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할 때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