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는 보수적 색채가 두드러진 도시로 알려져 있다. 사실은 농촌지역이 대부분인 경북의 한 도시로서 도시적인 대구보다도 더 보수성이 강한 도시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보수적 기류가 흐르게 된 것은 1961년 군사 쿠테타로 민선 지방자치가 중단되고 임명직 관료제가 30년 동안 이어져 오면서부터 형성된 것 같다. 그 이후에도 1991년 지방자치가 다시 도입되어 민선 시의회가 구성되고 1995년부터 민선시장이 선출되면서도 여전히 퇴직 관료, 군인, 경찰 출신들이 시장과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보수적 도시이미지가 굳어져 근 60년간 보수의 땅이 된 셈이다.　 그 근저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경주에서 우리나라의 역사성을 찾으며 보문관광단지를 개발하면서 강한 인상을 경주에 남겨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깔려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경주인의 피에는 개혁적 진보성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지배권력에 대항해 인간존중의 민중의식을 가지고 동학을 창도한 수운 최제우와 해월 최시형이 경주에서 태어나 서학에 반론을 제기하며 민중운동을 벌리면서 경주에는 개혁적 DNA가 흘렀다. 　 1910년대 최대독립군 단체였던 대한광복회 총사령으로, 울산에서 태어났지만 외동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경주 녹동 고향집으로 가다 체포되어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하여 경주 내남 묘소에서 잠들고 있는 독립투사 박상진의사도 울산 뿐만 아니라 경주가 존경하는 인물이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최대 노블레스 오블리주 가문으로 나라가 없으면 부자도 없다는 정신 하에 경주 최부자 최현식과 최준 가문도 일제하 조선총독부의 집중적인 감시 속에서도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자금을 보냈으며 모든 재산을 영남대에 희사하여 민중을 위한 교육사업을 펼친 것도 익히 아는 사실이다.　 지난 60년간 보수적 관료정치인이 경주를 지배하였지만 그사이에도 진보적 성향을 가지고 무소속이나 민주당으로 출마하여 당선된 적도 있다. 몇 번의 낙선 끝에 심봉섭 의원은 신민당후보로 1971년에 박정희 대통령의 막강한 민주공화당후보를 누르고 당선된 적이 있어 경주는 야성이 매우 강했던 도시다. 1972년 10월 유신 전야의 그 해를 상상하면 엄청난 저항적 기질을 보여 준 도시가 경주였던 셈이다. 　 그리고 1981년 교수 출신으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김순규 의원도 경주인들이 배출한 정치인으로 경주는 야성적 기질을 가졌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1994년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후보로 출마했던 이상두의원을 선출했던 것도 야성이 있음을 보여준 것이었다. 이처럼 지난 60년을 되돌아보면 야성적 성향을 때로는 보여왔던 도시가 경주였다.　 야성은 기존 질서를 새롭게 개혁하고자 하는 대중적 욕구 발현이다. 그 발현이 이상두의원 선출 이후 27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다시 일어날 조짐이 보인다. 그 촉매제는 박정희, 박태준, 전두환의 공과를 실용적 차원에서 재평가한 안동태생의 경주이씨 이재명에서 찾을 수 있다. 세상의 변화는 비주류의 주류 교체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어떤 계기로 주류 내부의 변화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경주가 다시 한번 그 데자뷰를 보여줄지 모른다.　 그 욕구가 바닥에 잠재되어 있음을 직접 느낀다. 세상이 민주화된 현재의 시점에서 반정부를 외치는 것은 제대로 된 야성의 발현이 아니다. 암울한 독재가 우리를 압도할 때 발현되는 야성만이 올바른 야성이다. 지금은 60년 캐묵은 무사안일의 공고한 카르텔 틀을 깨는 것이 제대로 된 야성의 분출이다. 　 정파적 정치인이 내세우는 구호적 자유가 아니라 우리 머릿속의 진정한 사고의 자유가 필요하다. 그럴 때 변화가 시작되고 창의가 나오고 그것이 지역발전의 새로운 모멘텀이 된다. 기성 질서에 대한 저항과 개혁의 경주 선비정신이 한번 나올 전기를 맞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