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늦은 밤 인적 드문 도로에 네 살짜리 자기 아이를 거리에 버려두고 남자친구와 차를 타고 가 버린 엄마가 있다 한다. 옛날 잔혹 동화 속의 이야기가 아니다. 경기도에서 최근에 일어난 사건이라고 보도되었다. 비단 이 사건만이 아니다. 바로 며칠 전에도 계모가 세 살 된 아들을 학대하여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사건, 어린 정은이 사건, 여행용 캐리어에 아이를 가두고 학대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 등, 인간으로서는 차마 생각도 하기 어려운 참혹한 일들이다. 그것도 엄연히 아이를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는 제 부모들(계모,계부도 엄연한 부모이다)에 의해서 저질러졌다니 말이다. 　 언론에서 이런 사건들을 접할 때마다 경악과 분노를 넘어 같은 시대의 성인(成人)인 나라도 죽은 아이들에게 부모 대신 사죄하고 용서를 빌고 싶어진다. 어쩌다가 인간이 이렇게까지 잔인할 수 있을까? 제 아이를 버리거나 파는 행위는 지나간 역사 속에서 볼 때 극심한 자연재해로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하거나 오랜 전쟁으로 삶의 바탕이 무너졌을 때나 간혹 일어날 법한 일들이었다. 그런데 어느 시기보다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는 오늘날, 왜 누구보다 보호받고 사랑받아야 할 어린 생명들이 이런 비인간적인 행태의 희생이 되어야 하는가?　 1923년 소파 방정환은 아이들을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해야 한다고 선언하며 `어린이`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주의 뇌신경의 말초는 늙은이에게 있지 아니하고, 젊은이에게도 있지 아니하고 오직 어린이들에게만 있는` 것을 늘 생각하라고도 선언했다. 이 선언은 어린이가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존재인가를 힘주어 깨우치는 말이다.　 일전에 단감을 먹다가 문득 어릴 때 감 씨앗을 가지고 놀던 생각이 났다. 감 씨앗을 세로로 깨물어 쪼개어 보면 쪼개진 씨앗 안에 미래의 싹이 될 작은 배아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어릴 때는 이것을 조심스럽게 살살 파내어 숟가락이라고 하며 몇 개씩이나 모아서 늘어놓기도 했다. 마치 작은 숟가락처럼 보이지만 나중에 숟가락의 통통한 자루 부분은 감나무 줄기, 그리고 넓직한 부분은 감의 잎이 될 것임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장난삼아 감 씨를 쪼개 놀던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지만, 요즈음은 감 씨앗 속의 선명한 숟가락을 보면 어쩌면 이렇게 완벽하게 작은 우주를 지니고 있는가하는 경이로움을 느낀다. 선명한 떡잎이 그 속에서 점점 자라나 완전한 하나의 나무가 되어 감꽃을 피우고, 여름에는 두꺼운 그늘을 드리워 주고, 가을이면 예쁜 주황빛 열매들이 되어 우리에게, 또 새들과 다른 어린 짐승들에게 맛있는 먹이가 되어주는 환상이 눈앞에 실루엣으로 떠오른다. 이 작은 배아 하나가 자라서 또 많은 열매를 달고 그 속에 수 많은 배아들을 또 키우면서 누대로 생명이 이어져 가는 신비로움을 생각해 본다. 　 어린이들은 바로 이 감 씨앗 속의 작은 배아가 아닌가? 작고 귀여운 아이들의 모습 그 자체가 미래에 이 사회를 만들어 갈 귀한 배아가 아닌가? 어린 그들이 자라서 어떤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나갈지를 우리는 아직 모른다. 이들 중 누가 포스트 모던 시대의 정신적 암울함을 밝혀 줄 인물이 될지, 불확실한 미래의 해답을 고심하고 문제를 풀어나갈 인물이 될지, 그 무수한 가능성을 아직 우리는 모른다. 어떤 어린이든 모든 어린이는 어른들로부터 보호 받고 자라야 할 권리가 있다. 누구도 어린이를 함부로 대할 권리는 없다. 스스로 일어나서 자립할 때까지 오직 사랑으로 가꾸고 품 안에 보호할 의무만이 있을뿐이다. 　 요즈음 농촌 마을에는 어린아이 보기가 귀한 곳이 한 두 곳이 아니다. 몇 년 동안 아이울음 소리가 들리지 않은 읍면 마을에 노인들만 남아 농사를 짓고 있는 곳도 많이 있다. 새 생명이 태어나지 않고 노인들이 소멸하고 나면 그런 곳은 앞으로 자연스레 없어질 읍면들이 되고 말 것이다. 어린이가 없는 사회는 미래가 없는 사회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의 건전한 성장을 위해서도 어린이는 당연히 사랑과 보살핌으로 보호되고 성장되어야 한다. 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던 사건들이 우리 사회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가슴이 무너지고 분노까지 일게 하는 그런 일들이 다시는 단 하나라도 일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간절함으로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