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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특별기고] 유방백세 빛나는 교방 사종 홍도 그 이름 - 경북신문
유방이란 낱말을 한글로 표기하면 여러 가지의 의미를 갖는다. 아마도 첫 번째로 떠오르는 의미의 이름은 어머님의 젖가슴일 것이다. 우리는 모체로부터 태어나서 제일 먼저 닿는 것이 어머니의 유방이다. 어머니의 가슴 속에서 뛰어나오는 따뜻한 자애의 박동을 느끼며 젖을 공급받아 자라게 되었다.   국가 사회가 가난했던 시절에는 허기 찬 영아에게 만족할만한 모유도 충분하게 공급되지 않았다. 모유가 충분히 생출(生出)하려면 모체의 영양공급이 충분해야 하는 데 일일 삼손의 끼니도 만족하게 먹을 수 없는 절대 빈곤 때문에 모체는 피골상접의 애처로운 용태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머니 젖꼭지만 물고 있으면 젖은 공급되지 않더라도 따뜻한 사랑의 맥동을 느낄 수 있어서 울음을 참을 수 있었다. 이 같은 이야기는 요즈음 젊은 세대에게는 신화 같은 스토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8,90대 세대들은 영원히 지울 수 없는 불망의 기억일 것이다.  어머니! 당신의 유방이 없었다면 어찌 인류사회가 존속할 수 있었을 것인가. 불효의 눈물만 후회의 모진 고통이 되고 있음이 죄송스럽다.   두 번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유방은 유방백세(流芳百世)에서 볼 수 있는 유방(流芳) 그것이라 생각된다. 이 유방은 `향기 듬뿍한 꽃다운 이름`을 상징한다. 이름은 물질명사도 아닌데 어찌 거기에 향기가 날 수 있을까. 여기에서의 향기는 취각적 향기가 아닌 정신적·사회적 향기를 말한다.   여러가지 어려운 삶의 환경을 극복하고 인류사회의 평안한 삶을 위해 기여한 사람들의 그 `꽃다운 이름`이 영원히 전해지기를 바라는 기원에서 사용하는 유방백세의 유방은 참으로 순수한 불후의 가치어(價値語)이다.   경주에서 태어나서 꽃다운 이름을 남긴 성현이 무수히 많지만 그 중에서도 기생이라는 신분에서 조선 정조 임금으로부터 홍도(紅桃)라는 호(號)를 하사받은 최계옥 교방사종(敎坊師宗)은 더욱 가슴 뭉클한 애화(哀話)를 전해주고 있다.   홍도 최계옥은 조선 후기 정조·순조연간에 활동한 경주의 이름 높은 기생이다. 무술년(정조 2, 1778∼1822)에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가선대부(종 2품)로 휘는 명동이고 어머니는 동도의 세습 기생이었다.  그는 천자(天姿)가 빼어나고 영오(穎悟) 하였다. 나이 겨우 10세에 시와 서에 통달하고 음률을 깨우쳤으며, 14세에 얼굴과 재주가 모두 뛰어났다. 20대에 상의원에 선발되어 들어가 노래와 춤으로 장안에서 독보적 존재가 되어 이름을 온 나라에 떨쳤다.  국구인 저동에 사는 박상공(박준원)이 보고 좋아하여 외부(外婦)로 삼고 수 십 년을 함께 살았다. 박상공이 농담으로 놀려 말하기를 너는 어찌하여 이와 같이 야위었느냐 하니, `앵무시(鸚鵡詩)`를 지어 자기의 뜻을 비유하여 말하기를, "푸른 옷깃에 붉은 치마 입은 새는 매양 하늘과 무지개를 향하여 울고 있으니 깊숙한 새장 속에 갇혀 오래 있음에 어찌 얼굴이 야위지 않으리오"라고 시를 지어 답(詩答)하였다는 것이다.  상공이 죽자 복결 후 고향 경주에 귀한하여 다시 교방에서 일하면서 후학을 가르쳤다. 임오년(순조 22, 1822)에 병이 들어 위독해지자 붓을 가지고, 죽은 뒤에 부탁할 말을 기록하였다. 후사(後嗣)가 없으니 모든 재산을 친척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였다. 붓을 놓고 자리에서 명종(命終)하니 나이 45세였다.  신해년(철종 2, 1851)에 이르러 고을의 풍류객과 교방의 여러 악공 및 기생들이 홍도를 악부의 사종(師宗)으로 추앙하여, 그를 잊지 않기 위해 각자 약간의 재물을 모아 묘비를 수갈 하였다.  그 비문에 홍도를 독보장안(獨步長安)하고 명진삼국(名振三國)이라 하여 서울 장안에서는 견줄 수 없는 독보적인 인물이며 그 명성이 온 나라를 진동케 하였다고 밝게 새겼다.   이 비는 부서지고 묘소는 도지동 코아루 아파트 단지 조성 때 무연고로 화장되어 없어졌으며, 금장대 남쪽 소공원에 세워진 홍도의 유적비는 "산에 꽃은 적적(寂寂)하고 달만 창창(蒼蒼)하도다"하였으나 기생이란 출생적 한을 극복하고 천자절이(天姿絶異)와 시서가무(詩書歌舞)를 삼국에 떨쳐 교방사종으로 추앙받은 영세불망의 경주 여인 홍도(紅桃) 그 유방(流芳)! 어찌 만고에 빛나지 않으리오.
즐겨찾기+ 최종편집:2022-03-03 오후 09:09:55 회원가입기사쓰기구독신청지면보기전체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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