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언어에서는 항상 어린아이 웃음소리가 묻어났다.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의 웃음소리는 마치 푸른 하늘을 날아오르는 새소리처럼 맑고 청아하잖은가. 무엇보다 그는 넘치는 유머와 위트로 주위 사람들 마음을 편안하게 이끄는 힘도 지녔다. 미남은 아니었다. 따뜻한 웃음이 매력이었다. 그의 잔잔한 웃음을 대하노라면 탁류에 휩쓸려 휘청거리던 마음이 평상심을 되찾은 듯 평온해지곤 하였다.　 수년 전 일이다. 마음이 까닭 없이 심란하여 무작정 서울행 고속전철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그동안 별러왔던 그와의 만남을 위해 연락도 없이 불쑥 인사동을 찾았다. 그곳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그였다. 갑작스런 방문에 특유의 밝은 웃음을 웃으며 나를 반가이 맞이했다. 　 때는 마침 지옥염천의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말복이었다. 그는 먼 길을 달려온 나를 위하여 손수 삼겹살을 구워주며 맛있는 점심까지 대접을 해온다. 문학이야기, 삶의 애환 등을 털어놓던 그였다. 느닷없이 제목이 예사롭지 않은 손바닥만 한 서책을 내 앞에 꺼낸다. 그리곤 즉석 사진기를 가져와 다정스레 옆자리에 앉는다. 순간 엉겁결에 그와 나란히 앉은 내 모습이 그만 사진기에 `찰칵!` 찍히고 말았다.　 지인들이나 문우들이 자신을 찾아오면 이렇듯 함께 찍은 즉석 사진을 자신의 수필집, `나의 봄은 당신입니다` 의 속지에 붙인단다. 그런 후 그는 이 책을 이들에게 나누어준다고 했다. 그의 남다른 발상이 무척 신선했다. 그는 연하의 남성 문우였다. 아니 서울 모 신문사에 지면을 위, 아래 코너로 차지하며 이십 여 년 가까이 함께 활동해 온 필진이었다는 말이 더 적합하다. 이런 인연 탓인지 그는 나를 만나면 때론 "누님!" 이리 부르다가도 우스갯소리로 `윗방, 아랫방 한 지붕 사람`이란 말로 지칭 하곤 했었다. 　 황태영 수필가와 지인 몇몇이 `5시 모임`이란 모임까지 가질 정도로 친밀감이 돈독했다. 그는 모임에서도 항상 뛰어난 유머와 해박한 지식으로 주위 사람들을 행복감에 젖어들게 하는 마력을 지녔다. 우린 만나면 사회적 신분, 연령의 고하와 관계없이 그 시간이 기쁘고 즐거웠다. 가장 황태영 수필가를 가슴에서 지울 수 없는 것은 그의 인품 못지않은 높은 작품성에 의해서다. 　 글은 곧 그 사람이라고 했던가. 독자의 입장으로서 바라본 그의 작품집에 대한 평이다. 문文은 곧 인人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그의 문체는 매우 유려하고 청기淸氣의 기운이 그득했다. 또한 따뜻하고 섬세하며 올곧은 성품처럼 그의 자연관, 인생관이 작품 면면마다 용해된 글이 전부였다. 그의 작품은 특히 인간 문제에 직핍直逼한 자연관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는 그의 자연에 대한 관조觀照 및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의 집적集積이기도 하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의 인식이 아닌, 인간 문제와 자연에 대한 동일시가 이루어진 표현의 작품이어서 매우 감흥 깊다. 　 그는 다름 아닌 수필집, `나의 봄은 당신입니다`의 저자 황태영 수필가다. 이 한 권의 수필집 속에서 그가 간구하는 봄이 인간 문제와 연접連接 되었음을 여실히 간파할 수 있다. 봄의 기운이 따숩다 한들, 또한 아무리 봄철이 생명 도약의 계절이라고 예찬 하여도 사람 가슴만큼 온기 있으랴. 또한 심성만큼 자태가 아리땁고 희망적이진 못할 것이다. 　 오죽하면 황태영은 봄을 일러 "봄은 격렬한 전투가 아니라 조용히 자신을 드러내는 계절" 이라고 언술했을까. 이렇듯 그의 작품 속에 내재된 작가의 남다른 통섭은 독자로 하여금 한껏 미적 감수성에 젖도록 견인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요즘은 눈만 뜨면 언어의 홍수 속에 떠밀려 산다. 스마트 폰을 통하여 숱한 대화가 오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 대화는 늘 겉돌고 만다. 속내를 드러내놓고 허심탄회 하게 말했다가는 자칫 낭패 당하기 십상이다. 진심어린 속내를 드러내는 말보다 우선적으로 듣기 좋은 달콤한 말, 과장으로 포장된 언어가 각광받는다. 이런 언어 구사를 잘하는 사람이 처세에도 성공하는 시대다. 진실이 실종되고 거짓이 판쳐서 가짜로써 변신술에 능통해야만 살아남는 세태가 아니던가. 　 하지만 황태영은 그의 글처럼 삶도 진솔하고 인품 또한 정갈하여 반듯했다. 사람을 만나면 예의 바른 태도로 일관했다. 말 한마디조차도 상대를 위해 진심으로 배려했다. 타인이 항상 높은 자존감을 갖게끔 언행을 행한 게 그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맑은 혼을 지녔으며 격조 높은 작품을 창작하던 그가 수 년 전 홀연히 이승을 하직했다. 무엇이 그리 급했을까. 이젠 그의 탈속한 모습도, 소탈한 웃음도 더 이상 대할 수 없다. 그는 비록 떠났지만 그가 남긴 아름다운 문향文香과 고매한 인향人香은 아직도 내 가슴에 한껏 배어 있어서 그에 작품집을 무시로 펼쳐들게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