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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관 특별기고] 어느 판사님 이야기 - 경북신문
한 청년이 청운의 꿈을 품고 고시원에 들어갔다. 그리고 육법전서를 모두 독파,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판사가 된다. 약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법복(法服)의 권위가 그에 대한 호칭을 영감님으로 바뀌게 하였으니, 매사 행동거지가 영감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연쇄살인범으로 기소된 범인을 공판하게 되었는데, 검사의 기소내용이 너무나 명확해 보임에도 일말의 뉘우침이 없이 한사코 자신의 범죄사실을 부인하는 범인에게 분노를 느낀 판사는 피고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한다.   수개월 후 죄인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되는데, 아뿔싸! 이게 무슨 청천벽력이란 말인가? 죄인에 대한 사형집행 직후에 엉뚱한 곳에서 진범이 체포되었고, 사형수는 억울한 누명을 쓴 채 수사과정에서 온갖 고초를 겪다가, 오판(誤判)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 후 그 판사는 자신의 오판으로 무고한 사람을 죽게 한 그 죄책감 때문에 다시는 법정에 앉을 수가 없었고, 술로 나날을 보내다가 결국 스스로 법복을 벗고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다는 일화인데, 소설같이 들리는 이 이야기는 오래 전에 내가 아는, 한 법조인으로부터 들은 얘기일 뿐, 사실 확인이 어렵긴 하지만 결코 픽션 만은 아닌 것으로 기억한다.  엄혹했던 그 때 그 시절, 무서운 권력자의 위세에 눌려, 혹은 자신의 영달(榮達)을 위해 저질러졌던 사법살인에 대한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꽤 있을 것 같은데, 그나마 자신의 오판에 대한 책임감과 죄책감으로 속세의 삶을 등진 그 젊은 판사의 이야기가 그리 감동스럽게 다가오지는 않더라도 오늘 우리사회 사법현실과 대비되는 것만은 사실이다.  사법을 집행하는 공무원도 신이 아닌 사람이기에 절대 완전할 수 없고 오판할 수는 있다. 그러나 운전자가 어떠한 악의도 없이 저지르는 업무상 과실(過失)에도 책임과 배상이 따르기 마련인데, 하물며 신이 아니지만 신의 영역이라 할 만큼 무거운 책임이 따라야 할 사법집행자에게 우리는 어떤 책임을 묻고 있는가?   무고한 사람에게 죄를 씌워도 기소책임이 없고, 무고한 사람에게 억울한 형벌을 내려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면, 그런 법집행은 사회정의 구현이 아니라 가장 무서운 범죄이자 제도적 폭력일 수밖에 없다. 악의 없는 제도적 행위 과실도 문제지만 의도적 사법 오적용(誤適用) 행위 즉, 사법 범죄는 가장 반사회적인 인륜범죄에 다름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형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은, 열 사람의 범인을 놓쳐도 단 한 사람 무고한 범인을 만들면 안 된다는 것인데, 요즘 우리 사회는 미리 유죄를 추정한 후, 목표가 된 특정인을 범인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 그러니까 오히려 유죄추정을 원칙으로 하는듯한 느낌을 가지게 하지 않는가?   떡을 만졌으니 떡고물 먹었을 개연성이 있고, 그러니 먹지 않았음을 증명하라. 증명하지 못하면 너는 떡고물을 훔쳐 먹은 범인이다. 라고 한다면 아무도 떡을 만들 사람이 없을 것이며, 만일 어떤 농부가 참외를 심게 되면 그 참외밭 주변의 도로는 자동으로 폐쇄되어야 한다. 그리고 고속도로에 진입한 모든 운전자는 잠재적 속도위반 경범죄 피의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인데, 운전자에게 속도위반을 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라고 한다면?  우리가 어쩌다가 이런 사회를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모든 국민들이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되고, 미디어를 지배하는 사람들의 사찰 대상이며, 표현의 자유(?)를 가진 누군가가 의혹만 제기하면 특정인은 곧 범인이 되어야 한다. 이는 비단 정치인에게만 국한되는 사항인 것 같지 않고, 민간 영역에서도 실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는 얘기다.
즐겨찾기+ 최종편집:2022-03-03 오후 09:09:55 회원가입기사쓰기구독신청지면보기전체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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