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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결선생을 그리며 - 경북신문
백결 선생은 신라 자비왕 때의 거문고의 명인(名人)으로 경주 남산 기슭에 살았다. 어찌나 가난한지 백 군데 꿰맨 옷이 메추리를 달아놓은 것 같은 것을 입었기로 그 당시의 사람들이동리(東里) 백결선생이라 불렀다. 이러한 가운데도 백결 선생은 1점(點) 물루(物累-몸을 얽매는 세상의 괴로움)가 없이 오직 거문고만을 사랑하여 희로애락과 모든 불평불만을 거문고로 풀었다. 어느 해 세모가 되자 그 해 풍작한 곡식으로 이웃 집집마다 떡방아를 찧는 소리가 온 동네 퍼졌다. 이 소리를 들은 백결의 아내가 방아소리를 듣고서는 “이웃 사람들은 농사지은 곡식으로 방아를 찧어 떡을 만들고 환한 웃음소리가 산천에 퍼지는데 당장 오늘 밥 지을 끼 꺼리가 없으니 어떻게 새해를 맞는다 말이요” 슬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자 백결선생은 가난을 원망하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무릇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하늘에 명(命)이 있고 부귀는 사람의 팔자에 매인 것이요, 그런 불행이 오면 막을 수도 없고 간다 해도 쫒아갈 수 없는데 그대는 왜 그렇게 슬퍼하오? 내가 그대를 위하여 떡방아 찧는 소리를 내어 위안해 주겠소”하고 거문고를 타서 떡방아 소리를 내었는데 세상 사람들이 그 곡조를 전하여 이름을 대악(망앗대 음악)이라 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가난은 언제나 어진 백성과 함께 했으며 나라도 가난 구제가 어렵다고 했다. 백결은 이런 가난에서도 오직 한 곳에 심취되어 마음의 위안을 삼은 것이 오로지 거문고 뿐이었다. 예술가는 이렇게 배가 고픈 시절이 많았던 모양이다. 어떤 가난한 대학생이 학교 주변을 다니면서 리어카에 채소를 싣고 틈틈이 팔면서 고학해서 공부했지만 그 해 수석 졸업으로 대통령 표창을 받은 일이 생겼다. 많은 신분 기자들이 왜 하필 채소장사냐? 한 달 수입이 얼마나 되었느냐? 가난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수석자의 말, “가난은 수치가 아니고 불편 할 뿐이다” 그도 백결선생이다. 손경호 논설위원장
즐겨찾기+ 최종편집:2022-03-03 오후 09:09:55 회원가입기사쓰기구독신청지면보기전체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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