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전과 심리전도 수준차를 극복하는 힘은 되지 못했다. 한국이 2010 남아공월드컵 본선 B조 2차전에서 아르헨티나에 1-4로 대패했다. 그리스전에서 2-0 완승을 거뒀던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선전을 다짐했지만, 현격한 기량차를 확인하며 곤잘로 이과인(24. 레알 마드리드)에게 해트트릭을 내주는 수모 끝에 8만2000여 관중 앞에 고개를 숙여야 했다. 이날 경기에서 한국은 4-2-3-1, 아르헨티나는 4-3-3 전형을 들고 그라운드에 나섰다. 허정무 한국 감독(55)은 한 수 위의 실력을 가진 아르헨티나와 전면전을 벌이기는 힘들다는 판단 아래 기존 4-4-2에서 박주영(25. AS모나코)을 원톱으로 세운 뒤, 선수비 후역습 전략으로 나서는 길을 택했다. 또한, 경기 초반부터 거친 몸싸움과 협력수비로 아르헨티나 선수들을 괴롭히며 상대를 초조하게 만든 뒤, 흐름을 가져오겠다는 계획이었다. 디에고 마라도나 아르헨티나 감독(51)은 12일 나이지리아전에서 오른쪽 측면에 포진시켰던 리오넬 메시(23. 바르셀로나)를 중앙으로 포진시키며 더욱 공격지향적인 전술을 쓰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결과적으로 메시를 봉쇄하지 못한 것이 패인이 됐다. 중앙과 측면을 가리지 않는 프리롤 임무를 수행한 메시는 폭발적인 순간 스피드와 화려한 발재간, 동료를 이용하는 영리한 플레이를 앞세워 한국 수비진을 농락했다. 메시와 함께 공격 일선에 나선 카를로스 테베스(26. 맨체스터시티)를 간과한 것도 또다른 패인이었다. 테베스는 한국 수비진 3명이 달려드는 상황에서도 밀리지 않는 파워 넘치는 드리블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보여줬던 출중한 실력을 그대로 발휘했다. 허 감독은 지난 4일 스페인과의 평가전에서 분전했던 기성용(21. 셀틱)을 김정우(28. 광주)와 함께 수비형 미드필더로 내세웠지만, 기성용은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한채 수비에 힘을 보태는데 실패했다. 오히려 경험과 수비 기량 면에서 앞서는 것으로 분석됐던 김남일(33. 톰 톰스크)을 후반 초반이 아닌 선발로 내보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풀백 오범석(26. 울산)과 이영표(33. 알 힐랄)는 아르헨티나 공격진의 스피드에 눌려 번번이 찬스를 허용했다. 중앙수비수 조용형(27. 제주)과 이정수(30. 가시마 앤틀러스)는 메시, 테베스의 스피드를 전혀 따라잡지 못하며 공간을 내줬다. 공격 일선에 선 박주영(25. AS모나코), 박지성(29.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염기훈(27. 수원)은 전면 압박에 나선 아르헨티나의 수비진을 뚫지 못한 채 무력한 모습을 보였다. 그나마 분전한 것은 이청용(22. 볼턴 원더러스)이었다. 오른쪽 측면 공격수로 나선 이청용은 한국이 0-2로 뒤지던 전반 중반부터 역습의 축으로 활약하며 동료들에게 찬스를 연결했다. 전반 추가시간 1분에는 아르헨티나 수비수 마르틴 데미첼리스(30. 바이에른 뮌헨)의 실책을 놓치지 않고 골로 연결하며 생애 첫 월드컵 득점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이청용은 후반 13분 역습 상황에서 오른쪽 측면으로 쇄도해 들어오던 염기훈(27. 수원)에게 단독찬스를 열어주기도 했지만, 더 이상의 공격 포인트는 기록하지 못했다. 이날 세계 수준과 현격한 기량차를 드러낸 한국의 월드컵 원정 첫 16강행은 불투명해 보인다. 나이지리아는 수비가 약점으로 꼽히지만, 아르헨티나 못지 않은 공격력을 가진 팀이라는 평가다. 아르헨티나전에서 총체적인 문제점을 드러낸 상황에서 대등한 실력을 갖춘 나이지리아를 꺾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더불어 전후반 통틀어 4골이나 내주며 붕괴된 수비진의 자신감을 남은 기간 살려낼 수 있느냐도 나이지리아전을 앞둔 관건으로 지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