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ning: file_get_contents(http://www.kbsm.net/data/newsText/news/etc/index_view_page_top.json) [function.file-get-contents]: failed to open stream: HTTP request failed! HTTP/1.1 404 Not Found
in /home/kbsm.net/www/default/include_skin02/head_view.inc.php on line 64 [김혜식 생활칼럼] 영구 마누라 - 경북신문
헤살꾼인 사내아이들이다. 걸핏하면 이름 대신 `식혜`라고 부르곤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일이다. 이외에 별명 하나가 더 있었다. `딱따구리`가 그것이다. 당시 가장 귀에 거슬리는 별명은 딱따구리였다. 수업이 끝나면 교실에 남아 웅변대회 연습을 했다. 사내아이들이 내가 연습하는 웅변 어느 내용의 대목을 흉내 내며 놀릴 때는 화장실에 숨어들어 혼자 울곤 하였다.
그래서일까. 훗날 결혼 후엔 제발 이름을 꼭 불러달라고 배우자 될 사람에게 미리 주문한 적도 있다. 그러나 지금껏 남편은 연애 때 그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다. 요즘 코로나19로 집안 칩거에 의해 몸매가 다소 통통 해지자, "통실아!" 라고 부르곤 한다. 어려서 별명에 시달렸던 트라우마가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으련만…. 결혼해서도 남편 입을 통하여 이름 대신 여전히 별명을 듣고 있다.
어제 일이다. 집 앞 호숫가 둘레 길로 새벽 운동을 나갔다. 한참을 뛰다가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하여 수변水邊 벤치에 앉았다. 옆 의자엔 초로의 부부가 자리하고 있었다. 둘이서 도란도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는 게 들려왔다.
이 때 남자가 여인에게, " 영구 마누라 오늘은 운동 안 나왔네" 라고 말한다. 그러자 여인은, " 선희 씨, 오늘은 늦잠 자나봐" 라고 응수한다. 이 말에 남자는, " 영구 마누라, 요즘 살 많이 쪘던데, 운동 좀 열심히 해야겠어" 라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이 말에 여인은, 영구 마누라로 부르지 말고 "선희 씨!" 라고 불러 달라고 부탁한다.
그는 아내 말에 `영구 마누라`가 더 부르기 편하단다. 남의 마누라 이름을 항시 불러주어야 하느냐며 여인에게 항변까지 한다.
비록 낯선 부부가 나누는 대화의 귀동냥이지만 갑자기 입맛이 씁쓸했다. 양성 평등 시대라는 현대에도 여자는 결혼만 하면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잃고 산다는 것을 새삼 느껴서다. 여자는 결혼 하여 아이를 낳으면 아무개 엄마, 누구 아내로 살기 예사 아닌가. 엄연히 여성도 부모님이 낳아서 키우고 교육 시킬 땐 아들과 동등하게 양육했잖은가.
이름이 뭐 별거냐고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 모르나 삶 속에서 이것만큼 중요한 게 어디 있을까. 호칭은 사회적 신분 고하를 판가름하게 하며 사물의 성질 및 특성을 분별케 한다. 가령 예를 들어서 어느 회사 사장을 일개 사원의 신분으로 부른다면 어찌 될까. 대학교 교수님을 "학생!"이라고 부른다면 얼마나 큰 실수이고 무례일까. 우리가 오징어를 고등어라고 지칭한다면 혼란스러울 듯하다. 인간은 물론 모든 사물엔 각자 고유의 명칭이 있기 마련이다.
이런 이름이 요즘은 변질 된 경우도 있다. 젊은 여성들이 결혼해서도 자신의 남편을, "오빠!" 라고 부르는 게 그것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남편은 자신의 아내에게, " 동생아!" 라고 불러야 한단 말인가. 식당에 가서도 여성 종업원을, "이모!" 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찌 식당 여종업원이 자신의 이모란 말인가. 이모는 어머니 여동생 혹은 언니를 일컫잖은가.
하다못해 해마다 온 나라를 몇 번씩 강타하는 반갑잖은 태풍에도 호칭을 붙여준다. 개가 새끼를 낳아도 강아지마다 이름을 붙인다. 계절마다 다투어 피어나는 꽃 및 잡초에도 명칭이 주어졌다. 이로보아 호칭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렇다고 하여 이름이 제 구실을 다 하는 것만은 아닌 성 싶다.
이규태의 글 `장관長官 호칭 考`를 살펴보면 장관이라는 말이 그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듯하다. 우선 `관官`하면 `민民`과 대치되는 이미지가 물씬 한 터수에 우두머리 `장長`자까지 붙고 보니 국민 위에 군림하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란다.
즉 관리官吏란 말을 공무원公務員으로 바꾼 이유가 관료주의적인 군림 이미지가 민주주의 세상에 걸맞지 않아서라고 했다. 그럼에도 그 관리의 장이라는 뜻인 장관이란 말이 아직도 버젓이 살아있는 것은 모순이라고 일갈했다. 그의 언명으로 미뤄 봐도 이름에 내재된 의미는 자못 지대하고 의미심장하다.
이 참에 이 땅의 기혼 여성들을 누구 엄마, 아무개 아내, 아줌마로만 부르지 말았음 한다. 그들에게도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정당하게 되찾아 주는 작은 배려야 말로 진정 성 평등 시대에 동참하는 일이란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