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밝아 올 무렵 경주여자고등학교 인근 대로변에는 낯선 눈매와 까무잡잡한 피부, 생소한 말투로 대화를 나누는 이들이 있다. 통근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수십 명의 외국인 근로자들이다.  새벽녘을 깨우며 일하던 7·80년대 산업역군이었던 부모 세대의 자리가 이제는 외국인들로 채워지고 있는 지역 모습이다.    경주시는 경북도내에서 거주 외국인 인구가 가장 많은 지자체 중 하나이다. 지난해 3분기 기준 경북도내 5만1241명의 등록 외국인 가운데 경주시가 9744명으로 23개 시·군 가운데 경산시 다음으로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외국인은 국적별로는 베트남 2958명, 우즈벡 1094명, 카자흐스탄 1010명, 중국 549명 등 동·중앙아시아계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경주에 자리 잡은 1만명의 외국인들은 지역 전반에 걸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경주시내를 비롯해 성건동·용강동·외동읍 지역 번화가 주위를 둘러보면 한자와 낯선 영어표기(베트남어)의 상점 간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시내 옛 명동의류 점포의 사거리 일대에는 외국인 대상 옷 가게와 화장품 판매점·슈퍼마켓·음식점 등이 늘어선 모습으로 아시안거리로 불린다.  중앙시장에서도 생선과 야채 등 식료품을 사기 위해 서투른 한국말로 상인들과 흥정을 하며 값을 치르는 외국인들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또 현지에서 자전거를 주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는 베트남인들이 늘어나면서 도심 곳곳에는 젊은 베트남 여성들이 자전거를 타며 시장을 보거나 삼삼오오 이동하는 모습도 눈길을 끈다. 외국인 1만시대, 상생과 번영을 위한 경주시의 행정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다. 경주시의 외국인 정책은 어느 지자체보다 선제적이고 포용성을 갖추고 있다. 실례로, 최근 주낙영 경주시장이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겨울 패딩을 제공하기 위해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봉사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지난해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대선 후보보다 먼저 선별적 복지가 아닌 외국인을 포함한 전 경주시민 긴급재난안전지원금 지급을 가장 먼저 실천하기도 했다. 또한 올해부터는 외국인 가정의 자녀 양육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안정적인 정착을 지원하기 위해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는 외국인 아동들에게 매월 10만원의 보육료를 전액 시비로 지원한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세금낭비다. 우리 동네, 어렵고 못 사는 사람부터 챙겨라`라고 근시안적으로 지적하기도 한다. 경주지역 외국인 절반에 해당하는 4317명이 외동읍 등 공단과 농촌에서 근로자로 일하고 있다. 청·장년들의 인구감소와 유출이 심화되면서 지역 중소기업들이 인력난 해소를 위해 외국인 고용을 해마다 크게 늘리고 있는 상황이고, 또 농어촌 지역의 심각한 일손부족으로 지자체들이 앞다퉈 자매결연 등으로 맺은 해외도시에서 외국인 일꾼 모시기를 하고 있다.   경주시의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5만9645명(23.68%)으로 일찌감치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했고, 인구절벽에 따른 노동력 및 생산성 감소는 심각 단계를 넘어선 상태이다. 그야말로 외국인 근로자가 경주의 버팀목인 세태다.   주낙영 경주시장은 최근 가진 신년 기자 간담회에서 "낡아빠진 해묵은 정치인이 되기 보다 경주시를 위한 행정가의 길을 걷고 싶다"고 했다. 인구 소멸 위기의 낡아빠진 경주가 살아갈 길은 지역사회의 `해묵은 집안 챙기기`가 아니라 외국인과 다문화 가정의 `포용을 통한 상생`이라고 생각한다. 같이 사는 세상, 함께 걸어갈 천년고도 경주의 희망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