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적인 나는뼈가 없어 이제 칼도 두렵지 않죠상처를 잊는 법을 알고 있어어떤 비명도 지르지 않죠자존심의 각에 따라 모서리가 생겨나도심장만큼은 물컹하죠바깥에서 바라본 중심은 아득하지만굳이 나를 고집하려 하지 않아서들러리와 어울려 맛을 내죠바스러진 꽃 스미고 뭉쳐몽글몽글해진 하얀 살갗비로소 당신 살과 피가 되고 싶죠토막 쳐지는 내 삶의 어설픈 구간은맷돌의 어처구니를 돌린 당신의 방식이죠 -피귀자,`두부를 말하다` 시인들은 세상의 사물들을 상투적으로 보지 않는다. 다른 각도로 삐딱하게 혹은 비스듬하게아래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혹은 비틀어서 본다. 　 깊은 사유에서 낯선 발견이 온다. 은유나 이미지의 발견이 온다. 　 날마다 식탁에서 만나는 두부를 보면서 나는 왜 단칸방을, 새하얀 머릿속을, 물컹한 심장을, 으깨어진 뇌를 발견하지 못했을까? 　 조말선 시인은 두부에 관한 어느 시에선가 두부를 `단칸방` `새하얀 머릿속` `으깨어진 뇌`로 보았다. 시의 눈이다.　 피귀자 시인은 대구에서 활동하는 좋은 수필가며 시인이다. `두부를 말하다`시는 재밌다.　 시의 화자는 인생의 산전수전을 다 겪은, 생이 고행임을 이미 터득한 지혜로운 생활인이다.　 두부를 다양한 인간의 모습으로 재밌게 묘사한다. `뼈가 없어, 칼도 두렵지 않은 순종하는 인간` `상처를 잊는 법을 알아 어떤 비명도 지르지 않는 인간` `자존심 같은 모서리는 있어도 심장만큼은 따뜻한 인간` 굳이 나를 고집하지 않고 들러리들과도 잘 어울리는, 바스러진 꽃 같은, 비로소 당신의 살과 피가 되고 싶은` 두부(頭部)`가 아닌 두부(豆腐) 이야기다.　 이 세상이 이해하기 어려울 때 삐딱하게 보는 것도 하나의 이해 방법이 아닐까.　 세상은 아무리 아름답고 아무리 신비로워도 잘 이해하기 힘든 우주와 같은 것.이토록 이해 할 수 없는 삶이 오늘도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그러나 삶은 계속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