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 일과를 마치고 해가 저물면 갈증을 달래려 찾던 목로주점이 사라져 가고 있다. 동료들과 어깨를 곁고틀며 주점의 포장을 들치면 커다란 무쇠솥에서 국이 끓고 생선이나 육고기를 굽는 냄새가 가득 몰려오는 정겨운 분위기가 우리 주변에서 점점 떠나간다. 주거니 받거니 하는 술잔에 서민의 애환이 건너가고 위로와 토닥거림이 어우러지던 그 훈훈한 풍경이 지금은 거의 지나간 추억처럼 아련하다.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의 오이소 식당은 여전히 과거 우리가 얼큰한 취기에 젖어 하루의 피로를 털어내고 서로에게 힘과 용기를 쥐어주는 목로주점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20년 전 처음 이 마을에서 주점을 마련했던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식당을 찾는 고객층이 바뀌지 않았고 그들의 모습이 여전히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의 결을 가졌기 때문이다. 오이소 식당은 아침과 점심에는 일반 한정식 음식점 영업을 한다. 특히 아침식사는 뷔페 차림이어서 이른 출근길을 서두르는 고객들이 입맛에 맞는 음식을 빠르게 먹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16가지의 반찬이 차려지는 뷔페식 아침식사는 한수원 직원과 월성원전 직원, 월성원전에 파견된 인력 직원들이 든든하게 식사를 하고 건강하게 출근할 수 있도록 최적화된 방식이다. 김진선(57) 사장은 인근 마을인 양남면 수렴리가 고향이다. 오랫동안 객지생활을 하다가 20년 전 고향에 정착하면서 고향의 주민들과 이곳에서 생활하는 건강한 직장인들에게 위로가 되는 인심 후한 식당을 시작했다. 점심식사는 정해진 메뉴를 두지 않고 매일 다른 식단으로 고정 고객이 싫증을 느끼지 않도록 했다. 점심시간에는 반찬이 더 늘어난다. 일반 가정에서 먹을 수 있는 다양한 밑반찬과 바닷가 마을답게 싱싱한 해산물도 등장한다. 좁은 상에는 다 얹을 수 없을 만큼의 음식들이 차려지지만 가격은 놀라울 정도로 저렴하다. 저렴한 가격이지만 음식 하나하나는 모두 정갈하고 간이 적당하다. 김 사장은 “이윤을 남기고자 한다면 이 마을에서 인심을 얻기 힘들다”며 “허술한 식당을 찾아주는 고객들이 식사를 하고 나서 ‘맛있었다’고 말하면 돈을 버는 일보다 더 보람이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고객들은 김 사장에게 ‘손 큰 누나’라는 애칭을 붙여줬다. 손이 큰 김 사장은 고객들의 밥상이 허술한 모습을 보면 참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항상 재료비 감당이 안 된다고 종업원들이 푸념을 한다고도 했다. 예를 들어 주말에 약 230개의 도시락을 제작해 주말 근무를 하는 월성원전 직원들에게 공급하면 어김없이 적자를 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공급되는 도시락은 블라인드 평가에서 최고의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김 사장은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 항상 즐거워 찾아오는 고객들이 남 같지 않다”며 “이른 아침부터 늦은 시간까지 장사하다 보니 신체적으로는 피곤이 겹겹이 쌓이지만 가게에 나올 때가 가장 즐겁다”고 말했다. 해가 지면 백열등이 켜지는 오이소로 출출한 직장인과 주민들이 하나둘 몰려든다. 푸짐한 안주를 앞에 두고 하루 일과를 정리하면서 술잔을 기울이는 고객들에게 최대한 편안한 분위기를 선사하기 위해 작은 스피커에서는 구수한 트로트 음악이 잔잔하게 흘러나온다. 주점으로 바뀐 저녁의 오이소는 열기가 넘친다. 그리고 주점의 벽에는 이곳을 찾는 고객들이 거나한 심정으로 써내려 간 진솔한 글들이 빼곡하다. 전형적인 목로주점의 정겨운 풍경이다. 김진선 사장은 “식당을 꾸려가면서 푸근한 인정이 그리운 고객들을 위해 모든 열정을 바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고달픈 인생살이에 잠시 쉼표가 될 수 있는 공간으로 오래 남고싶다”고 밝혔다. ▲주소 : 경주시 양남면 나아3길 6-2 ▲전화 : 054-771-4494▲위치 : 읍천교차로에서 북쪽으로 200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