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노란 숲에 갔다. 많은 사람들이 환한 숲 사이로 걸으며 연인들은 평소보다 조금 더 순화(純化)된 마음으로 손을 잡고 서로를 바라보며 웃어주고 서로 어깨를 기대며 연신 사진을 찍고, 아이를 데리고 온 어떤 가족은 바람에 흔들리는 노란 잎처럼 까르르 웃는 아이를 앞에 세우고 사진을 찍고는 했다. 　 이 계절이 지나고 숲의 황금빛도 바래고 나면, 그들은 사진을 다시 꺼내 보며 그 눈부셨던 가을날 이야기를 주고받을 것이다.　 경주시 서면(西面) 도리 마을의 은행나무숲이 요즘들어 많은 각광을 받고 있다. 원래는 묘목 판매를 목적으로 심어진 은행나무들이 세월이 흐르면서 빽빽한 숲을 이뤄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낸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아는 사람만 찾던 숨겨진 경관이었는데 그 동안 알음알음으로 은행나무숲을 찍으러 사진작가들이 찾아오고, 결혼을 앞둔 신랑신부들이 웨딩사진을 찍으러 오곤 하여 이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비경이 되었다.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마을 사람들이 손수 농사지은 배추니 무니 콩 등의 농산물들을 내놓고 판매하는 임시장터가 생기기도 했다. 은행나무가 사람을 부르고, 마을을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해 내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으로 흥성이는 마을 장터에서 가을무 한 단을 흥정하다가 문득 프랑스 작가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이 생각났다. 황량한 프로방스 지방 알프스 산간에 양을 치며 살아가는 노인이 나무를 심어가는 이야기로, 한 사람의 꾸준한 행위가 어떻게 마을을 변화시켰는지가 짙은 울림으로 다가오는 글이다. 　 오지를 여행하던 화자(話者)가 외딴 산간에 혼자 사는 양치기 노인의 집에 우연히 들르게 되고 거기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주머니에 모아 온 도토리들을 꺼내 실한 것만 골라서 모으는 노인의 행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튿날 아침 노인과 동행한 화자는 노인이 양을 치러 가는 곳곳마다 땅을 파고 골라내어 둔 도토리를 심는 것을 관찰하게 된다. 무뚝뚝하고 과묵한 노인이 그렇게 해서 키운 참나무 묘목들을 보면서도 그저 괴팍한 노인이라고만 화자는 생각한다. 　 몇 년이 지난 후 다시 그곳을 찾은 화자는 묘목이 자라서 울창한 참나무 숲이 되고 물이 졸졸 흐르는 개울과 벌들이 잉잉거리는 광경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식물의 수분을 돕기 위해 이젠 벌치기가 된 노인을 만난다. 이후 화자는 종종 노인을 찾아가고 그가 황량하고 척박하던 그곳을 풍요로운 마을로 만든 기적을 만나게 된다. 　 마을이 황량했을 때는 희망 없이 살며 작은 일에도 싸움을 일삼던 마을 사람들조차 부드럽게 변하고 마을의 아름다운 경치를 찾아 사람들이 찾아오는 기적을 이룬 노인에게서 화자는 성자를 연상한다고 했다. 　 우리에게도 이같은 기적이 일어났던 것을 알고 있는지? 　 지금이사 어딜 가나 우리나라 산들이 봄, 여름, 가을의 변화에 때맞춰 신록(新祿), 녹음(綠陰), 단풍의 아름다운 변화를 보여주고 있지만 과거에는 그렇지가 못했다. 땔나무가 난방과 취사의 주원료이던 우리나라의 생활상은 온 나라의 산들이 맨살을 드러낸 헐벗은 모습으로 남게 했다. 　 나무가 없는 산은 큰물이 지거나 격렬한 태풍이라도 휩쓸고 가면 그로 인해 인명을 빼앗거나 재산상의 큰 피해를 입히는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홍수로 토사가 그대로 흘러내려 산 아래 마을을 덮치고 애써 가꾼 논밭의 작물을 흙더미에 파묻히게 했다. 　 그러다가 1960년대 이후 계획적인 사방(砂防)공사로 꾸준히 나무를 심은 결과, 지금과 같이 나무가 우거진 산을 보게 되었다. 벌거벗은 산에 어린 묘목을 심고 가꾸며 무너져 내린 돌과 토사(土砂)들을 정비하는 그 모든 과정이 하나하나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졌다. 필자에게도 학창 시절 4월5일 식목일이 되면 학교를 하루 쉬면서 산으로 나무를 심으러 갔던 기억이 남아 있다. 　 사람의 힘은 참 크다. 그래서 사람의 힘이 모이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무언가를 이뤄내고야 만다. 결국 기적이란 사람의 힘이 오랜 시간 누적되어서 만들어낸 긍정적 결과를 일컫는 말이 아닐까? 그렇게 해서 인류는 유토피아를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또 그런 유토피아의 이면에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 변화, 그로 인해 몸살을 겪는 지구의 생태 환경 같은 디스토피아를 초래하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 `인터스텔라`의 의 명대사처럼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힘이 아주 크니까, 저 노란 황금빛 은행나무 숲을 한 사람이 만든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