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임한지가 어언 만15성상(星霜)이 지나고 있으니 세월은 그 사이 사람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자유롭게 가고 만 것 같다. 　 강의 준비를 하느라고 바쁘게 여러 서적을 볼 때는 시력도 피곤하지 않았는데, 질년에 접어드니 어느덧 노안(老眼)이 되어 서책 몇 장을 넘기지 못하고 시야가 침침해지니 독서에 불편함이 심하다. 　 텔레비전 화면을 보아도 몇 분을 견디지 못한 채 어둠이 시야를 가린다. 그래서 눈이 밝을 때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어른들은 가르친 것 같다.　 긴 밤을 무심히 보낼 수 없어서 서가에 진열되어 있는 책을 꺼냈더니 2015년 5월 22일에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한 `소서(素書)`였다. 　 이 책은 6년 전에 구입해서 한 차례 정독을 했던 것인데, 다시 펼쳐보니 감명을 주는 구절에 잉크 선은 분명히 보이나 문장은 거의 기억되지 않았다. 금과옥조 같은 구절도 망각에 밀려 한 마디 작별인사 없이 무성으로 떠나고 말았다. 끝내 공(空)으로 무(無)로 회귀하고 만 것이다.　 `소서`의 원저자는 황석공(黃石公)이다. 황석공은 진(秦)나라 말과 한(漢)나라 초에 걸쳐 활동한 병법가이다. 그는 진나라의 가혹한 정치를 피해 세상을 떠나 은거(隱居)했다고 하며, `소서`를 쓰고 나서 책을 전할 만한 인물을 찾으려고 천하를 주유하다가 마침내 장량(張良)을 만나 후인으로 삼고 이 책을 전했다고 한다. `소서`에 다음과 같은 의미 깊은 구절이 있기에 다시 새겨 본다. 　 시선(詩仙)이라 불리는 이백(李白)도 어릴 적에 공부가 싫었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 날 등산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한 노파가 냇가에서 바위에 도끼를 갈고 있었다. 그 모습이 이상하여 물어 보았다. "할머니, 지금 왜 바위에 도끼를 갈고 계십니까?" "바늘을 만들려고 간단다" 전혀 상상도 못했던 노파의 답변에 이백은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찌 도끼로 바늘을 만든단 말씀입니까?" 노파는 가만히 이백을 쳐다보며 말했다. 　 "애야, 비웃을 일이 아니다. 중도에 그만두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이 도끼로도 바늘을 만들 수 있단다" 의외(意外)의 이 말을 듣는 순간 이백은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그 뒤부터는 한눈팔지 않고 글공부에 전념했다고 한다. 　 그가 시선(詩仙)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경험이 계기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부작침(磨斧作針)`이란 말은 이 이야기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도끼를 갈아서 바늘을 만든다"는 이 말은 어떻게 생각하면 시간만 낭비하는 어리석은 짓일지 모른다. 어렵고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라도 꾸준히 노력하면 반드시 이룰 수 있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우공이산(愚公移山), 수적천석(水滴穿石)이란 말도 이와 유사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공이산`은 어떤 일이든 끊임없이 노력하면 산도 옮길 수 있다는 의미를 지닌 말이고, `수적천석`은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는 말이다. 　 낙수(落水)의 수많은 빈도에 의해 바위에 구멍이 생기듯이 작은 노력이라도 중도에 포기 하지 않고 계속하면 결국 큰일을 성취할 수 있다는 고사들이다. 　 "큰 재주를 가졌다면 근면은 그 재주를 더 낫게 해줄 것이며, 보통의 능력밖에 없다면 근면은 부족함을 보충해줄 것이다"라는 18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초상화가 조슈아 레이놀즈의 말도 근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소서`는 `자자숙숙(孜孜淑淑) 소이보종(所以保終)`이라 가르치고 있다. 자자(孜孜)는 부지런하고 근면 성실한 태도를 형상화한 의태어로서 인간이 일궈낸 모든 성과는 작은 노력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강조한 표현이다. 　 숙숙(淑淑)은 착하고 착하게 사는 태도, 너그럽고 온화한 성품을 지니고 있는 모습을 일컫는 의태어이다. 보종(保終)은 끝을 보존한다는 뜻을 지닌다. 그래서 `자자숙숙 소이보종`은 부지런하고 온화하면 마지막을 잘 지켜낼 수 있다는 의미이다. 　 대장동 사건 같은 빅 이벤트에 수천 억 원의 돈이 서민에게는 신화 같이 들릴지 모르나, 어렵고 힘든 시대를 맞았지만 작은 일이라도 꾸준하게 노력하여 마침내 이룰 수 있는 지혜를 소서에서 찾을 수 있기를 바라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