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정체성을 담은 지자체 전용서체가 등장하고 있는 가운데, 경주시가 한글날 공개한 `신라문화체`와 `신라고딕체`가 경주시를 대표하는 서체로서 자격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경주시는 지난 9일 한글날을 맞이해 신라문화체와 신라고딕체 2종을 선보였다.19일 시에 따르면, 두 종류의 서체 개발을 위해 1900여 만원의 개발비를 들였으며, 정수암 서예가가 서체 개발에 많은 도움을 줬다.그러나 이 서체에 신라 혹은 경주를 대표할 수 있는 정체성이 담겨있는 것인지 제대로 알 수 없다.최근 상주시에서 개발한 상주곶감체와 상주경천섬체, 칠곡군의 칠곡할매글꼴, 안동시의 안동엄마까투리체가 지역의 특색을 담거나 의미를 담으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에 대조되는 부분이다.상주곶감체는 상주 대표 특산물인 곶감을 형상화했으며 상주경천섬체는 상주의 경천섬을 붓글씨로 형상화해 만들어졌다.칠곡할매글꼴은 지난해 성인문해교실에서 한글을 배운 할머니들의 손글씨를 본따 만들어졌으며, 안동엄마까투리체는 안동의 캐릭터 엄마까투리를 형상화했다.이처럼 서체는 단순한 글씨가 아니라, 지역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자리잡고 있는 추세다.기업에서도 마케팅 차원에서 전용서체를 개발하고 있다. 현대카드의 서체인 `유앤아이`는 기업 전용 서체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히며, 가독성 등을 고려해 영문서체와 어울리도록 제작됐다.현대카드는 이 서체를 카드뿐 아니라 광고와 임직원 명함, 사옥 내 안내판 등에 사용하면서 소비자들에게 서체를 각인시키고 있다.반면, 신라문화체는 개발 이후 활용 방안에 대한 뚜렷한 대책이 보이지 않고 있다.신라문화체는 유려한 붓글씨체며 신라고딕체 또한 글자가 굵고 자간이 좁아 가독성이 떨어져서 공문서로 사용되기 부적합하기 때문이다.경주시를 대표하는 서체지만, 두 서체가 짧은 문구로만 사용되는 현수막, 광고, CI(City Identity) 등으로만 활용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예산 낭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국내 유명 폰트 개발업체 A디자인 관계자는 "보통 지자체 서체는 가독성이 떨어지지만 상징성을 담은 폰트 하나, 독창성이 떨어지더라도 가독성이 좋은 폰트 하나를 기본으로 제작 의뢰가 들어오는 편"이라며 "모든 서체를 가독성이 떨어지는 글씨체로 만드는 경우는 흔치 않다"고 말했다.지역 예술계 관계자는 "경주 전용 서체는 신라를 대표할 수 있는 상징성이 있어야 한다"며 "경주시가 경주 전용 서체에 대해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그러면서 그는 "지금이라도 추가로 경주를 대표할 수 있는 전용 서체 개발에 들어가야 한다"고 촉구했다.이와 관련해 경주시 관계자는 "이번 서체는 신라문화제와 관련해 홍보를 위한 서체 필요성이 대두돼 개발하게 됐다"며 "신라문화체가 신라문화제를 대표할 수 있는 글씨체에 걸맞는 것은 확실하다"고 해명했다.그러면서 "많은 홍보를 통해 시 공무원을 포함한 경주시민들이 폰트를 자주 이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