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고사에 나오는 얘기지만, 만일 `골리앗`이 `다윗`을 이겼다면 그게 얘깃거리가 되었을까? 그러나 모든 이의 예상을 깨고, 거대한 체구에 우람한 무기를 든 골리앗이 연약해 보이는 다윗의 손에 들린 새총 한 방에 나가떨어지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환호했고, 그 얘기는 오늘날 까지도 전설처럼 전해지게 된다.　 강자와 약자의 싸움에서, 강자가 약자를 이기는 것이야 너무나 당연한 결과이지만, 약자를 우습게 본 강자가 방심하는 사이, 예상치 못한 약자의 기습 공격에 쉽게 무너지는 강자들을 볼 때가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싸움을 좋아하고 또 재미있어할까? 　 자연계의 법칙으로만 보면, 강한 힘이 약한 힘을 통합하는 것이 순리이기 때문에, 강자가 약자를 이기고 다스리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사람들은 대개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을 정의로 생각하며 강자의 편에 서는 사람들을 비겁한 기회주의자 내지 불의한 행동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법칙 하에 있는 정글속의 삶에서, 맹수들에 비해 그다지 강한 체력을 가지지 못한 인류가 살아남아 최상위 포식자가 된 이유는,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영리한 두뇌와 협동정신 그리고 측은지심(惻隱之心)일 것인데, 특히 약자를 도우려는 측은지심이야말로 인간종(人間種) 이외 어떤 동물에게서도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아마도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가장 특이한 감정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일각에서는 공정을 앞세우며 경쟁을 정당화하지만, 무한경쟁이란 어디까지나 힘의 논리에 의해 지배되는 정글의 법칙일 뿐, 결코 지성화된 인간사회가 받아들일 생존게임은 아닐 것이다. 　 동물계에서는 강한 동물이 약한 동물을 결코 배려하는 법이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스포츠 경기에 있어서도 체급을 구분하듯, 어린아이와 어른 혹은 남자와 여자를 완전히 동일한 조건에서 아무 일이나 경쟁하게 하여 승자를 가리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 행동이 바로 사람과 동물을 구분 짓는 인간만의 지성일 것인데, 지금 우리사회는 100m 달리기에 90m 앞의 출발선에 서 있던 사람들이 불과 몇 발짝 움직이고 결승선에 이르러 스스로 게임에서 이긴 승자임을 주장하고 있는 꼴이 아닌가? 　 그러니까 목표 지점이 동일해도 출발 지점은 사람마다 다른데, 과정은 접어두고 결승선에 먼저 이른 사람만을 승자라 주장하면서, 그것을 경쟁이라 하고 또 공정(公正)이라 말 하는가? 공정한 게임이란 동일한 체급의 사람들이 동일한 출발선에서 동일한 게임 룰을 적용 받을 때의 경쟁을 이름이 아닌가?　 전설속의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것은 언제나 늘 있을 수 있는 흔한 사건일 수 없으며, 대단히 예외적인 환경에서 벌어진 돌발적인 해프닝이었거나 아니면, 늘 강자들에게 짓밟히는 삶을 살아야 하는 약자들의 카타르시스를 위해 누가 지어낸 이야기일 수도 있을 터인데, 우리는 이미 골리앗으로 태어난 사람들과 다윗으로 태어난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에서, 공정한 게임 룰이 어떤 것인가를 놓고 끝없이 소모적인 논쟁만을 이어가고 있다.　 어느 정치인이 억강부약(抑强扶弱)을 얘기했지만, 현실 사회는 오히려 억약부강(抑弱扶强)의 구조가 고착화되어 빈익빈부익부(貧益貧富益富) 현상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그간 지고(至高)의 가치인양 생각했던 자유경쟁,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모순과 부작용이 이미 한계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가운데 사람들은 코로나 팬데믹을 걱정하고 있지만,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무서운 경제 팬데믹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게 내 생각이다. 　 미래는 어느 날 우리 앞에 갑자기 나타나 보이지만, 사실은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된 것들이기에, 지금 우리가 본래의 인간성을 회복하고 서로 협동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우리사회의 미래는 없다는 말이 하고 싶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