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법조인에게 들은 말이다. 변호사는 음식상을 차리는 사람이고, 판사는 차려진 음식상에서 맛있는 음식만 골라 잡수면 되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변호사가 여러 가지 정황과 증거를 제시하면, 그 중에서 취사선택(取捨選擇)할 수 있는 사람은 판사이고, 판사는 자신이 취한 증거를 바탕으로 법리를 해석하고 자신의 의견을 더하여 양심에 따라 판시(判示)하게 된다는 얘기다. 　 그런데 동일한 사안, 동일한 증거를 놓고 담당 판사에 따라 왜 판이한 결과가 나오는 것일까? 그러니까 원심에서 유죄가 항소심에서 무죄가 되기도 하고, 항소심에서 유죄가 다시 상고심에서 무죄가 되기도 하는데, 무죄와 유죄의 차이는 다소 관점의 차이 정도가 아니라 하늘과 땅, 천국과 지옥의 차이만큼이나 극과 극을 오가는 결과인데도 말이다.　 물론 법관이 관심법 능력을 가진 신이 아닌 이상 오판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법관의 오류(?)를 인간적 실수(?)로 너그럽게 용인하기에는 개인은 물론 공동체에 미치는 피해와 역작용이 너무나 심각하기 때문에, 오판에 대한 철저한 원인 규명과 함께 반드시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엔지니어는 기계를 설계하거나 고장을 진단하며, 의사는 환자의 신체적 고장을 찾아 치료한다. 그리고 법관은 정의와 불의를 분별하며 한 인간의 운명을 결정한다. 만에 하나라도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거나 피해자가 가해자로 바뀔 수 있다면, 이는 일 개인의 억울함을 넘어 공동체의 존립 자체가 당위성을 가지기 어렵다는 점에서, 판결의 공정성, 정확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할 것이다.　 진리가 둘일 수 없듯이, 법이란 정(正)과 부(不)가 동시에 성립될 수 없는 것이기에 상반되는 법리해석이 허용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관에 따라 상반되는 법리해석이 나온다면, 누군가는 사리분별능력이 없거나 아예 법리를 모르거나 아니면 의도적 왜곡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할 것 같다.　 혹자는 법리를 모르는 법관이 어디 있느냐고 할는지 모르지만, 엔지니어라고 해서 반드시 기술에 정통하지는 않고, 모든 의사들이 다 생명을 살려내지는 못한다. 마찬가지로 법관들의 무오류(無誤謬)를 인정하려는 믿음 자체가 오류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너의 마음속을 보니 단 한 글자도 보이지 않지만, 그 안에 만법(萬法)이 있구나!" 육법전서에 기록된 성문법(成文法)보다 인간의 이성과 양심이라는 불문법(不文法)이 더 상위법일 수 있는 이유가 그것인데, 법관의 양심이야말로 신성한 가치를 지녀야 한다. 그런데 만일 양심을 믿을 수 없는 법관이 있다면, 그가 아무리 법리에 정통하다 한들 어찌 그를 법관이라 할 것인가?　 편식하는 사람이 입맛에 맞는 음식만 취하듯이, 제시된 증거를 자신의 취향에 따라 선택하거나 배척함으로써 객관적 진실이 아닌 주관적 결론을 만드는 행위는 그 어떤 법리로 치장해도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없게 된다. 사람이 사람에게 가할 형벌을 정하거나 옳고 그름을 판정할 권능은 법관이 타고난 것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들이 위임해준 제한적 권한일 뿐이다. 　 신(神)이 아닌 인간으로 타인을 심판할 수 있는 권한은 공동체 내에서 가질 수 있는 가장 크고 중요한 권한이라 할 수 있을 것인 바, 그 책임 또한 가장 막중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악의(惡意) 없는 오판(誤判)이라면 업무상 과실에 해당하고, 의도적 오판이라면 사악한 범죄에 해당됨으로, 법관의 오류는 어느 경우든 반드시 그 책임을 물어 마땅하지 않은가?　 운전자가 악의 없이 저지르는 업무상 과실에도 처벌이 따르며, 의사가 생명을 구하기 위한 시술 과정에서도 과실이 발견되면 형사적 책임이 따른다. 하물며 신의 영역에 속할만한 큰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과실(過失) 내지 고의적 오판이 있다면, 그 자격 박탈은 물론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는 것이 마땅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