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는 또 다른 피서라고 한다. 온 세상이 하얀 설국 속으로 걸어 들면 폭염에서 벗어날 수 있고 속세의 시끄러움마저 한 며칠 잊을 수가 있을까 그런 요량으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읽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한편 시보다 더 뛰어난 이 아름다운 한 문장의 유혹의 덫에 걸려들어 읽어야지 꼭 읽어야지 하다가 이제야 읽었다. 사실 일본이라는 혐오감에 벗어나서 문학적으로 본다면 읽어야 할 작품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눈길이 덜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앞으로 일본 문학의 대표작품들을 찾아 읽을 계획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은 감각적이고 서정적이고 절제미를 보여주는 이 소설을 일본 문학의 정수라고 일컫는다. 150여 페이지 분량의 길지 않은 중편 소설이다. 특히 일본어의 운율과 리듬을 알면 문장은 더 아름답고 빛이 난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어로 번역된 책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1935년 첫 출간 이후 1948년 완결판이 나오기까지 12년간 수정을 거듭한 미학적 완벽주의를 추구한 소설이다. 오랜 시일에 걸쳐 완성해 나간 만큼 그가 이 소설에 들인 정성과 노력에 두 손 모으고 싶다. 가슴에 새기고 배워야 할 작가주의 정신이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된 곳은 눈이 많이 오기로 소문난 니카타현 에히고 유자와 온천이다. 실제 작가는 이곳에서 머물며 소설을 썼다. 작가 본인 같기도 한 소설 속 주인공 시마무라가 이곳을 여행하며 머물다가 고마코 라는 게이샤를 만나면서 또 다른 소녀 요꼬 사이에 일어나는 미묘한 심적 변화를 감각적으로 표현했다.　 더불어 이 고장의 아름다운 풍광을 서정적 묘사로 곁들었다. 특정한 플롯이 없고 내용상으로는 특별난 스토리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이 책은 1968년 일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일본인의 심성의 본질을 매우 섬세한 표현으로 탁월하게 그려냈다는 것이 선정 이유였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의사의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조실부모하고 15세에 조부마저 세상을 떠나자 혼자가 되었고 몸도 병약했다. 외로움과 허무와 죽음이 그의 문학을 관통할 수밖에 없었던 환경이었다. 이 소설에도 그런 특징이 잘 나타난다. 문장 속에서는 제일 많이 등장하는 단어들이 헛된, 헛되다, 헛수고 같은 말이다. 곧 죽을 남자를 위해 게이샤 일을 하는 고마코와 곧 죽을 남자를 따라와 헌신하는 요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도 헛된 것이다. 머무는 바 없이 떠나야 될 여행가인 남자를 좋아하는 여인의 사랑 또한 헛수고임을 넌즈시 알려준다. 　 특히, 후반부 등장하는 은하수와 불꽃의 대입, 화재와 요꼬의 죽음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시마무라 몸속으로 쏴아 하고 은하수가 흘러드는 듯 했다는 표현에서 엿볼수 있다. 계절이 바뀌면 사르르 녹아 사라지는 흰 눈 같은 게 사랑이고 삶일까? 그는 왜 74세의 적지 않은 나이에 가스를 마시고 자살을 택했을까? 자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아마도 이 헛됨의 허무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노벨문학상을 받고 3년 후 한참 주목을 받던 때의 일이었다. 그가 죽은 1년 후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상이 제정되었고 문학인들이 가장 받고 싶어하는 최고권위의 문학상이 되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평소 여행을 즐겼다. `여행은 창작의 중요한 요소이다` `내 소설은 대부분은 여행지에서 씌여졌다` `혼자만의 여행은 창작의 집이다` 여행에 대한 작가의 말이 가슴에 팍팍 와닿는다. 이 무더운 여름 우리들은 어디론가 시원한 곳으로 떠나고 싶어한다. 가슴이 시원한 설국으로 가는 길은 의외로 쉽고 가까이에 있다. 그 길은 책 속으로 놓여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