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전의 과거사를 아직도 논쟁하고 있느냐고들 한다. 그런데 나는 묻고 싶다. 80년 전의 과거사를 아직도 청산하지 못했느냐고…　 가해자에게는 80년이 아니라 8년만 지나도 잊고 싶은 과거가 있겠지만, 피해자에게는 80년이 아니라 800년이 지나도 잊어버릴 수 없는 과거가 있다는 것을 아는 지들 모르겠다. 　 프랑스는 불과 5년간의 나치 치하에 있었지만, 8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반민족 행위자들을 추적하여 처벌하고 있으며, 유대인들은 아마 이후 800년이 지나도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잊지는 못할 것이다.　 치욕적인 을사늑약(乙巳勒約)을 시작으로 국권을 유린당한 후, 우리는 무려 36년간이나 이웃 섬나라의 지배를 받았다. 식민통치 기간 중에 일본인들이 우리 민족에 대해 행한 잔악행위를 새삼스럽게 여기 열거하려는 것이 아니라, 문제는 태평양전쟁에서 패전한 일본이 한반도에서 물러난 후 전개된 우리 역사일 것이다.　 일제치하, 자발적으로 `상투`를 자르고 창씨개명(創氏改名)까지 하며 일황(日皇)에게 충성을 맹세한 사람들이 누구인가? 적극적 반민족 행위의 대가로 기득권을 획득한 그들은 해방 후에도 단죄받기는커녕, 적산권력과 적산경제의 기득권을 그대로 이어받게 된다. 　 그러니까 친일 기득 세력들은 한반도의 지배권이 일본에서 미국으로 바뀌는 순간, 친일 제국주의자에서 친미 반공주의자로 변신하며 다시 그들의 기득권 유지를 꾀하게 되는데, 한반도 민족사에 대한 이해가 절대 부족했던 미군의 입장에서는 이미 일제로부터 잘 훈련되어진 그들의 앞잡이가 절실하지 않았을까 한다.　 그 후 칠십년,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순혈 민족주의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언제까지 우리는 불의(不義)가 정의(正義)를 지배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가? 그런 얘기다.　 물론 21세기를 살면서, 선조(先祖)의 죄를 물어 후손을 처벌하기야 어려운 노릇이겠지만, 그 불의한 기득권의 대물림까지 용인해야만 하는가는 또 다른 문제에 속할 것이다. 부의 세습, 권력의 세습, 특히 불의한 기득권의 세습이 온당한 일일 수 없다. 대한민국이 정상 국가가 되고 진정한 주권국이 되기 위해서라면, 이제라도 해묵은 모순을 청산하고 정의의 기준을 바로 세우지 못한다면, 지속되고 있는 우리사회 가치관의 혼란을 멈출 수가 없다. 우리는 이제, 우리사회 기득권의 민낯을 모두 보았다. 한반도는 주민이 주인인 나라가 아니라 혹시 토착화된 외세가 간접 통치하는 나라는 아니었던가? 　 내가 보기에, 반민족 세력들은 친일 인명사전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사회를 지배하는 기득계층 내에 골고루 뿌리하고 있기 때문에, 정원수 잔가지 치기처럼 철만 되면 요식행위로 되풀이 되는 개혁구호 따위로 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청산해야 하는 것은 친일잔재 적폐세력이 아니라 피지배에 익숙해진 우리 마음속의 패배의식일 것이며, 여기서 나는 개혁이 아닌 의식혁명의 당위성을 생각하게 된다. 　 나는 극단적인 민족주의 역시 집단 이기주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동족에게 행한 악행들은 반민족행위를 넘어 반인륜 범죄이기 때문에 시효가 있을 수 없고, 언제까지라도 끝까지 추적하여 역사 앞에 단죄되는 것이 옳다. 　 화해 치유를 얘기하는 사람들도 없지야 않지만,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그들이 진정으로 뉘우치고 민족 앞에, 아니 사람 앞에 사죄하는 모습을 본적이 없다. 어처구니없게도 우리 사회의 토착 기득세력이 된 그들은 아직도 이 나라가 그들의 지배하에 있고, 대를 물려가면서 그 지배권을 고수하기 위해 어떤 식의 집단행동을 하고 있는지들 보이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