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후반인 경주고교 1학년 시절에 한 동료는 `삼국지`를 통독(通讀)하고, 그것을 매일 점심시간에 들려주었다. 특히 그 친구는 발성이 유별나게 듣기 좋아서 모두가 경청할 수 있었다. 마치 실제 인물이 대면하여 나누는 대화처럼 그의 리허설(rehearsal)은 현실감과 삼차원적 입체감을 주어서 이해가 잘 되었다. 　 당시는 교과서 이외의 다른 교양서적을 접하기 어려웠던 때라 들려준 삼국지의 내용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높은 이상과 큰 꿈에 부푼 고교생에게는 많은 교훈이 되었기에 그 친구의 이야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생이돈오(生而頓悟)하고 자유호학(自幼好學)했던 그는 다른 동료에 비해 여러 재능이 뛰어나고 미남형이라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해군사관학교에 지망하여 마침내 제독이 되어 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해역을 지키며 국태민안을 위한 조국방위에 큰 역할을 하였던 것은 아마도 고교시절에 읽었던 삼국지의 영향이 아니었을까. 　 전역한 다음에는 국민의 대표로 정치에 참여하기를 바랐는데, 마치 옛 청백리처럼 임천(林泉)에 유유자적하며 조용히 지내고 있어서 이제는 어느덧 초췌(憔悴)한 노질이 되었으니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고교 졸업 후 어언 반세기가 지났지만 그 동료가 들려준 삼국지의 이야기는 직접 읽는 재미보다 실재감이 있었기에 아직도 기억에 잔존해 있다. 도원결의에서부터 관운장이 죽을 때까지의 긴 스토리며, 조조의 상매소갈(想梅消渴)를 비롯한 제갈공명의 전술전략, 끝없이 부침하는 군웅의 활약, 초선의 미모 등 방대한 내용을 어떻게 다 기억하였으며 그것을 특급배우보다 묘사를 잘 하였던 것 같아서 불망(不忘)의 붕우(朋友)로 회억되고 있다. 　 그 때 들었던 군웅들의 꿈과 용맹과 지략 등이 오늘날에도 유효하게 산지식이 되는 것 같아서 요즈음도 간혹 삼국지를 펼치는 것은 아마도 그 친구의 덕택이라 생각된다.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사람이 시행하기 어려운 일들을 해내는 사람을 영웅이라 하고, 같은 시대에 여기 저기 도처에서 일어난 많은 영웅들을 군웅(群雄)이라 칭한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유비 현덕, 관우 운장, 장비 익덕, 조운 자룡, 제갈량 공명, 조조 맹덕, 서서 원직, 손견 문태, 손책 백부, 손권 증모, 주유 공근, 동탁, 여포 봉선, 원소 본초, 원술, 유포, 사마의 중달, 강유 백약 등은 모두가 특색 있는 영웅이라 말할 수 있다. 　 이들은 각기 추종하는 다수의 인물을 거느리고 전장에서 대담한 리더십으로 용맹을 보여 주었고,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쳤거나 대권을 향한 집념에 일생을 바쳤기 때문이다. 　 내년 대선에 출마하고자 등단한 여권과 야권의 인사들이 마치 삼국지의 영웅인 듯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祖先)의 사당과 고향, 현충원 참배 등의 출발에서 보면 수많은 인사들이 마치 주군을 따르는 삼국지의 영웅처럼 텔레비전의 화면을 가득 채웠으니, 곧 대한민국의 대박이 터질 듯하다. 　 "왜 대통령이 되려는가?"의 물음에 대한 답에는 차이 있는 부분이 발견된다. 자당에서 경선을 거쳐 마지막으로 한 명의 후보자를 선출하기 까지는 아직 몇 단계의 어려움을 극복해야 하니, 일언과 일행이 모두 신중하고 의미 깊게 발설되어야 할 것이다.　 관심 있는 국민과 후보자들은 상대가 하는 표현행동에 민감하게 평가적 반응을 하고 있어서 보기 좋은 경기가 되어야지 수준 이하의 말과 행동이 돌발되어 그것이 화근이 된다면 대권을 꿈꾸는 자의 품격에 미치지 못하는 추행으로 끝나게 될 것 같아서 걱정스럽다. 　 대다수 국민이 바라는 정치의 방향과 정책 및 군웅의 용맹을 결집하여 훌륭한 빅(big) 게임(game)을 통해 위대한 대한민국 발전을 위한 아름다운 행진이 될 수 있도록 굳게 약속해 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