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가 ‘이건희 미술관’ 유치 의사를 밝혔다가 지난 10일 돌연 대구시에 양보한 것을 두고 문화예술계와 시민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외형적으로는 경북도의 ‘통 큰 양보’로 보이지만 시민 여론을 한 번도 물어보지 않은 일방적인 결정이어서 부풀었던 기대가 한꺼번에 사라졌다는 것이다. 13일 문화예술계 인사 A씨는 “경주시에 이건희 미술관을 유치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을 때 성사 여부를 떠나 문화·예술도시 경주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으로 시민들은 희망을 가졌다”며 “그러나 시민들의 의지를 정부에 제대로 전달해 보지도 못하고 대구시에 양보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갑작스러운 결정이어서 허탈감에 빠졌다”고 말했다. 경북도와 대구시는 대규모 국책사업 유치를 앞두고 공동 협력하는 등 행정통합에 앞서 문화, 경제 등 행정 전반에 걸쳐 상생협력하기로 하고 지난 10일 도청에서 이철우 도지사와 권영진 대구시장이 만나 대구·경북 상생 발전과 국책사업 유치 공동협력 방안 등 현안을 논의했으며, 이 자리에는 주낙영 경주시장과 이강덕 포항시장이 배석했다. 이날 경북도와 대구시는 최근 국가에서 추진하는 대형 국책사업인 ‘(가칭)국립이건희미술관 유치(문화체육관광부 주관)’와 ‘K-바이오 랩허브 구축 사업(중소벤처기업부 주관)’의 모든 과정에 공동 협력할 것을 합의하고 ▲이건희미술관은 삼성家의 뿌리가 있는 대구를 중심으로 경북이 참여하고 ▲K-바이오 랩허브는 경북의 과학·연구·산업 인프라를 중심으로 대구가 협력해 타 지역과의 유치전에 공동 대응하기로 합의했다. 결국 ‘이건희미술관’은 대구유치를 위해 경주시가 포기하고 적극 지원해 주기로 하고 ‘K-바이오 랩허브’는 경북유치에 대구가 협조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 같은 결정에 대해 경주시민들은 미술관의 유치는 지역 연고가 아니라 어떤 내용을 담고 미술관 입지에 어느 지역이 가장 명분이 있느냐를 고민해야 하는데 이를 무시한 결정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시민 B씨는 “미술관 유치를 나선 전국의 지자체가 삼성家와의 온갖 연고를 들고 당위성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 이건희 컬렉션이 어느 도시에 어떤 내용으로 담기느냐가 더욱 중요한 문제”라며 “경주시는 대한민국 역사문화의 뿌리며 글로벌 관광도시로 성장했기 때문에 세계적으로도 경쟁력 있는 미술품을 품기에 가장 적합한 도시”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시민들이 이건희미술관 유치를 위해 뜻을 모으는 일도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대구시 유치에 협조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은 것은 결코 바람직한 결정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경주이씨 종친회에서는 삼성가와 연락을 하면서 경주 유치의 당위성을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경주이씨 종친회 관계자는 “경북도가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아쉽지만 덧붙일 말은 없다”고 했다. 시민 C씨는 “‘K-바이오 랩허브’라는 첨단 과학산업을 경주시와 포항시에 유치하는 것도 지역 경제를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미술관이 들어섰을 때 생길 시너지 효과는 그것보다 훨씬 더 컸을 것”이라며 “물론 유치 가능성이 희박했다 하더라도 기대에 부풀었던 시민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과정을 빠뜨린 것은 매우 아쉬운 대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