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가 다른 동물들의 개체 수에 비해 대단히 희박하던 원시사회에서는 사람들이 가족 단위나 부락 단위의 공동생활을 영위 하면서도 대의기구 (代議機構)같은 것이 따로 필요치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공동체의 규모가 비대해지자, 그 많은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공동체 유지를 위한 각자의 의견을 개진하기가 어려워 졌고, 그에 따른 대안으로 등장한 제도가 다름 아닌 대의정치 제도였을 것이라는 말이다.　 주민들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주민 대표로 선출된 대리인들이 바로 대의원(代議員)인데, 기초의원이나 국회의원 모두가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즉, 대의원들이 주민의 권익을 위해 주민의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개인의 권익을 위해 일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스스로 그 대표성을 상실해 왔기 때문이다.　 물론 주민들이 선거를 통해, 역할에 충실하지 못한 대의원을 심판할 수도 있고, 또 근자에는 주민소환제도 등도 형식상으로는 존재하지만, 사실상 실행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리고 어디 그 뿐인가? 정당정치제도 하에서, 말은 주민의 대표를 뽑는다 하면서도 사실상 원천적으로 주민의 의사가 반영된 대표를 뽑는 것이 아니라 특정 정당에서 점지(點指)한 특정인을 주민들이 추인하는 과정으로 진행되는 것이 선거이고 보니 더 더욱 그 대표성에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까 지역구를 임의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한 현행 선거법 하에서, 특정 지역의 대표성과는 하등 상관도 없는 후보가 오로지 특정 정당의 이해관계에 의해 공수(空輸) 투하되기도 하는 것이며, 인물보다는 정당의 깃발이 선택을 강요하게 만든다. 때문에 주민들은 자신들과 어떤 동질성도 가질 수 없는 외계인을 주민의 대표로 선출해야 하는 경우도 없지 않은 것이며, 항상 최선의 선택은 없고 차선(次善)이나 차악(次惡)이라도 선택하여 최악만을 피하려는 것이 선거가 된지 오래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불합리한 선거, 비현실적인 정치체제를 유지해야 하는 것일까? 인간들이 공동체를 구성하여 집단생활을 시작한 이래 여러 가지 사회체제가 시험되어 왔지만, 그 어떤 체제도 영구불변(永久不變)인 것은 없었으며, 환경의 변화와 시대의 변천(變遷)에 따라 진화해 온 나머지, 자유와 평등이라는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현행 민주주의 정치제도를 가지게 된 것이 아닌가?　 그런데 현재 우리는 과연 완전한 자유를 누리고 있으며 또 평등한 사회에서 살고 있는가? 어떤 면에서는 봉건사회보다 더 심한 부(富)의 불평등과 신(新)계급사회에서, 대중이 유일하게 행사할 수 있는 투표권조차 진정한 민의(民意)를 반영할 수 없도록 여론이 조작되기 일쑤이고, 또 항상 최선을 선택할 수 없도록 만드는 현행 정당 공천제(公薦制) 등 왜곡된 대의 민주주의 제도를 고착시켜 왔다. 　 내가 보기에 민주주의 원리는 결코 복잡한 이론이 아니다. 주민의 주권을 확실하게 보장하는 정치제도를 일컬음인데, 전 국민이 어떤 합의를 위해 같은 장소에 모일 수 없었고, 또 각자의 의견을 용이하게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기에 대의 정치제도가 그 대안이 되었던 것이라면, 이제 첨단 통신기술이 직접 민주주의를 충분히 가능하게 하는 지금까지도 대중들보다 더 똑똑하지도 더 도덕적이지도 못한 그들에게 언제까지 우리의 미래를 맡겨 둘 것인지? 이제야말로 대의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