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미국 스탠포드 대학 사이언스-라이트 교수 조엘-슈르킨(Joel Shurkin)교수가 쓴 원재명 `The Human Toll`을 일본 닛케이 사이언스(2020년 11월호)에 게재, 필자가 발췌 번역했다.　 내 아내 캐롤 하워드(Carol Howard)는 60대 초반에 조발성(早發性) 알츠하이머병으로 진단받았다. 이 이후 나는 아내가 서서히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 그 기막힌 지성(知性)이 부분(部分)마다 분해되어 지각력(知覺力)이 서서히 떨어지고 그녀가 더이상 그곳에서 없어지는 것을 보았다. 알츠하이머-병임을 알게 된 아내는 이 병(病)과 싸울 결심을 했다. 　 두 가지 치료 약 후보의 임상(臨床)시험에 참가했으나 모두 실패로 끝났다. 우리에게 닥친 불가피한 운명(運命)을 깨달았을 때, 아내는 나에게 자신이 죽으면, 슬퍼해 달라고 말했다. 의학자들이 수십 년에 걸친 알츠하이머병 연구가 아무런 희망을 낳지 못하자 그녀는 분개(憤慨)했다. 완치 방법은 없고 효과적인 치료법도 없다.　 그녀는 여름 하늘과 같이 푸른 눈을 가진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온화하고 총명하며 상냥하고 친절했다. 처음 만난 것은, 내가 캘리포니아 대학 산타크루즈 교(校)에서 가르치던 사이언스 라이팅(science writing)과정을 그녀가 수강(受講)했을 때였다. 그녀는 늘 적절한 말을 적절히 사용한 글을 썼다. 해양생물학을 배워, 2마리의 큰돌고래(bottle-nosed dolphin)를 조사(調査)하는 박사(博士) 과정에서의 연구를 소재로 일반인을 향해 책(冊)도 썼다. 　 아내와 나는 산타크루즈 산지(山地)의 세쿼이아(Sequoia) 숲에서 15년간 살면서 한가로운 환경 속에서 집필했다. 그 후 볼티모어로 부부(夫婦)가 이사했고, 그녀는 존스홉킨스대 공중(公衆) 위생학부의 동물실험 대체법 센터에서 근무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멋진 직장이었다.　 6년쯤 전에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캐롤은 때때로 기억을 잃었다. 속도(速度)도 사라졌다. 어느 날 밤, 그녀는 컴퓨터 앞에 앉아 울고 있었다. 파일(file)을 다운받는 방법을 잊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지 못했다. 얼마 안 있어 병원(病院)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무서운 진단(診斷)이 내려졌다. 　 그래도 산책(散策)을 즐겼지만, 길을 잃게 되었으므로, 나는 그녀에게 `GPS 트랙커(GPSTracker=소형위성추적기)`를 들게 했다. 스스로 돌아올 수 없게 되었을 때는 내가 마중 나가거나 이웃집 사람이 데리고 돌아오게 되었다. 어느 때는 아내는 집을 나가도 잊고, 열쇠를 잠그지 않았다. 거리에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어느 해 추수감사절에 친척들이 우리 집에 모였을 때, 그녀는 침실을 나와 집 주위를 발가벗고 다녔다. 증세(症勢)가 악화(惡化) 되자 허공을 응시하며, 거실(居室) 의자에 몇 시간이고 앉아 있었다. 　 그 눈은 빛을 잃고 멍했다. 나는 그녀가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도, 이야기에 반응한다고도 기대하지 않은 채, 나의 하루 일을 아내에게 말해주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두 사람이 한집에 있었지만, 나는 혼자뿐이었다. 　 지난해 1월, 나는 넘어져 무릎과 갈비뼈가 부러져 어쩔 수 없이 병원에 입원했다. 딸 한나는 자신도 아버지도 어머니를 돌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캐롤을 위해 요양소(療養所)를 찾았다. 메디케이드(저소득자 등을 대상으로 한 공적인 의료비 보조 제도) 요양 시설(施設)이었다. 골절(骨折)에서 회복한 나는 일주일에 두 번씩 요양소를 찾아 그녀의 쇠약(衰弱)함을 보게 되었다.　 어느 날 그녀는 나를 자기 아버지로 착각(錯覺)했다. 그녀가 격렬하게 저항하며 간호를 거부하는 것을 나는 두 번 보았다. 마지막 광경은 잊을 수 없다. 2019년 10월 25일 정오, 딸 한나와 친구가 캐롤을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으나 다시 쓰러져 숨졌다. 나는 아내의 눈을 감겼다. 이날은 그녀의 칠순 생일 한 달 전, 우리의 결혼 28주년 한 달 전이었다. 그 뒤에 생긴 결과 가운데 하나가 경제적 재앙(災殃)이었다. 　 미국의 기능부전(機能不全)의 의료제도에 있어서 많은 미국인이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는 결말(結末)이었다. 법적인 문제들에 대한 대처를 변호사에게 부탁할 필요가 있었다(비용 1만2000달러). 그리고 연간 약 8만 달러가 든 간호비용을 요양소에 지불하기 위해서는 재산과 소득을 줄여, 메릴랜드주 메디케이드의 급부(給付)대상 자격을 얻지 않으면 안 된다는 변호사의 고지(告知)를 받았다. 은행 계좌에 겨우 2500달러를 넘는 예금(預金)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결국 나는 아내의 노령 연금을 몽땅 쏟아붓고, 자택을 팔고, 아파트로 이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재 내 생활은 엉망진창이다. 지금 내가 캐롤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그녀의 쇠약(衰弱)함과 죽음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기 때문에 그 기억은 당연히 강하다. 아래의 내용은 기억해 두려고 한다.　 캐롤이 죽기 3년 반 전(前), 나는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의 하나인 암스테르담의 로열 콘세르트 헤보 관현악단이 말러의 교향곡 제2번 `부활`을 연주할 예정임을 알았다. 캐롤은 같이 들으러 가자는데 동의(同意)했다. 훌륭한 연주였다. 연주회 후 우리들은 손을 잡고, 엷은 안개에 조용히 잠기는 공원을 산책했다. 캐롤은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아내의 얼굴 표정을 보고, 나를 인식(認識)하고 있었으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정열적인 음악 작품에서 말러의 오케스트라가 말하고 있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말러의 오케스트라는 분명히 그녀에게 감동을 주고 있었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음악(音樂)은 알츠하이머병 환자에게 끝까지 남는 인지(認知)의 하나다. 음악을 처리하는 뇌(腦) 영역이 건전함을 남겨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암스테르담에서의 이 체험은 우리가 사랑한 마지막이자, 내가 캐롤을 짧은 시간이나마 되찾은 마지막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