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개인의 정체성(正體性)은 무엇으로 규정되는가? 이름, 성별, 외모, 학력, 출신가문, 소속집단, 직업? 그러나 내가 보기엔 열거된 그 어느 것도 어떤 상품의 포장지와 다름 아니기에, 내용물에 비유되는 한 사람의 정체성을 규정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조건들이다. 　 방금, 공장에서 막 출고된 한 세트의 데스크탑 컴퓨터가 당신의 책상 위에 놓여 있다면, 당신은 그 PC를 무엇이라 규정할 수 있는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생산라인에서, 비슷한 부품들로 조립된 PC들은 물리적 구조면에서 대동소이할 수밖에 없는 것인데, 다만 거기에 어떤 소프트웨어가 심어지는가에 따라 그 PC의 정체성이 결정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윈도우`OS를 설치하면 윈도우 PC가 되는 것이며 `리눅스` OS를 설치하면 당연히 리눅스 PC가 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무슨 OS가 설치되어 있던, 또 거기에 다양한 유틸리티 프로그램들이 추가로 설치되지 않는다면 그 PC는 그냥 바보 깡통 상자에 불과해 진다.　 `호모사피엔스`라는 종(種)은 부모가 누가 되었던 간에 99.9% 동일한 DNA(설계도)에 의해 탄생하게 되는데, 출생 직후부터 다섯 종류의 감각기관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받아들여 정체성이 형성되고 성체(成體)로 성장한다. 　 인간을 제외한 동물들 중에는 빛의 명암은 구별하되, 색을 볼 수 없는 종들이 많다고 하는데, 다행히 사람은 정상적인 시력 하에서 대단히 칼러풀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 다양한 의미를 지닌 풍부한 어휘에 의해 여러 가지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축복을 누린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보다 조금만 열등해보이면 상대를 바보취급하기 일쑤이고, 또 반대로 조금만 우수해보이면 천재라고 치켜세우기 좋아 하지만, 내가 보기엔 사람의 두뇌는 마치 같은 공정으로 제작된 컴퓨터의 CPU와 크게 다르지 않아, 각 개체 간의 차이라고 해야 미미한 수준일 뿐인데, 다만 그가 어떤 환경에서 성장하며 어떤 정보들이 입력되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운명이 결정지어질 뿐이라 생각한다. 　 가령, 두 쌍둥이가 있는데, 한 아이는 무인도에 버려져 `타잔`처럼 동물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성장했다면, 그는 거의 동물과 같이 사고(思考)하고 동물처럼 행동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겠지만, 다른 한 아이는 명문가에 맡겨져 좋은 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하게 된다면, 그는 당연히 높은 인격을 가진 지성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어느 한 사람의 정체성이란 그 사람의 뇌 속에 저장된 정보의 총량이라고도 규정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일찍부터 특정된 정보가 입력되어 특정한 정체성이 형성된 사람들은 이미 뇌 깊숙한 곳에 롬(ROM : Read Only Memory) 정보로 자리한 자신의 의식(意識)을 수정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천재 과학자로 칭송하는 `아인슈타인`조차 나는 일생동안 내 두뇌의 10분의 1정도밖에 사용하지 못했다고 말한 것처럼, 우리 두뇌가 가진 잠재능력은 충분하지만, 다만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그 능력을 일깨우고 개발할 것인가? 　 그리고 어떤 질의 정보를 저장하게 할 것인가? 교육이란 다름 아닌 사람이 가진 무한한 잠재능력을 일깨우고 또 질 높은 정보를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지성체가 되도록 하기 위함일 터인데, 과거나 현재나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대개는 위정자들이 혹은 종교 지도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또 대중 지배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국민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주입시키는 악행들을 지속적으로 자행해 왔다는 사실이다.　 오늘 날 우리 사회에, 전혀 상반되는 정의를 주장하는 두 그룹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과거의 우리 교육과 현재 우리 언론의 현주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