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신정(神政)국가가 아니며, 국호가 뜻하는바 대로 민국(民國) 즉, 민(民)이 주인인 나라이다. 국가의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한 헌법 제1조 따위는 이제 누구나 알만한 진부한 내용일 뿐인데, 국민이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숨는 곳이 헌법이 아닌지 모르겠다. 일테면 `헌법정신`이나 `법과 원칙`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툭하면 위헌(違憲)을 들먹이며 헌재(憲裁)로 달려가는 사람들, 그런데 과연 헌법은 지고불변(至高不變)의 진리이며 신성불가침의 성전일까?　 중세기(中世紀), 남미의 잉카제국을 침공한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피사로(Francisco Pizarro)가 잉카의 왕에게 성경을 쥐어 주자, 잉카 왕이 한참을 이리보고 저리보고 냄새도 맡아보고 하더니, 별 쓸모없는 물건이라 생각하였던지 그만 그 성경을 땅바닥에 패대기쳐 버린다. 　 정복자들은 잉카왕을 신성 모독죄로 처형하고 제국을 멸망시키게 되는데, 성경을 하느님의 말씀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성경이 위없이 신성한 법전일 수 있겠으나, 잉카인들에게는 아마도 그들만의 전지전능한 신이 따로 있었을 터이다.　 내가 알기로, 미국을 포함한 현재 대부분의 서구 국가들, 특히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모든 나라 법의 모태(母胎)는 로마법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 같은데, 일본이 근대화 되면서 일본은 서구를 닮으려 했고,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던 우리나라는 또 일본을 모방하였다는 점이다. 물론 해방 후에 반쪽짜리 대한민국이 재 건국되면서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 받는다 하였으나, 헌법은 차치해두고 우리나라의 사법체계는 거의 일본을 카피한 것이라 해도 크게 과언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성전을 들고 있기에 성직자는 신성하고, 법전을 들고 있기에 법관은 신성한가? 내가 보기에 헌법이란 규모의 차이가 있을 뿐, 원리상 계모임이나 동창회의 정관과도 다르지 않아, 어떤 공동체 전체 구성원들이 합의하고 약속한 일종의 규약일 뿐이라는 말이다. 　 헌법이 정녕 신성불가침의 절대 진리라면 모든 나라의 헌법이 다를 수 없겠으나 헌법은 나라마다 다르고, 비민주적인 나라들일수록 헌법이 그 국민들의 합의사항이라기 보다는 위정자의 의지를 담고 있는 하나의 지배도구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우리 헌법 역시 건국 초기부터 권력지형이 바뀔 때마다 개악(改惡)과 개선(改善)을 거듭하여 온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인데, 과연 현재 우리 헌법이 절대 다수 국민의 뜻을 반영한 가장 합리적인 헌법인가를 묻고 싶어진다. 과거 독재자들이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하여 국민의 뜻을 참칭하며 삽입해 놓은 많은 독소조항(毒素條項)들이 우리 헌법에 없지 않을 것인데, 무슨 일만 있으면 상투적인 위헌 시비만 할 것이 아니라 시대정신에 부합하지 않는 불합리한 조문(條文)이 있다면 마땅히 개정함이 타당하지 아니한가?　 어느 때 누군가의 입맛대로 만들어 놓은 법전을 성전처럼 움켜쥐고, 그나마 그것마저 특정인들이 마음대로 해석하여 납득할 수 없는 법리(法理)를 펼치며 신성불가침을 외치는 것은, 그야말로 법치의 근본을 몰각(沒却)한 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법치(法治)는 사견(私見)이나 주장으로 성립(成立)되는 것이 아니며 만인(萬人)이 공감할 수 있는 가장 보편타당한 상식에 바탕하고, 가장 공정한 집행이 담보될 때 비로소 그 법이 신성한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헌법은 성전(聖典)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을 성문화(成文化)한 것일 뿐임으로 사회 구성원들의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 다시 쓸 수 있는 것이다. 법치(法治)란 법이 사람을 다스린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이 함부로 사람을 다스리지 못하게 하는 제도를 일컬음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