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가 불현 듯/ 가슴에 잉잉하게 차오르는 사람/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목을 길게 뽑고/두 눈을 깊게 뜨고/저 가슴밑바닥에 고여 있는 저음으로/첼로를 켜며/비장한 밤의 첼로를 켜며/두 팔 가득 넘치는 외로움 너머로/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너를 향한 그리움이 불이 되는 날/나는 다시 바람으로 떠올라/그 불 다 사그라질 때까지/어두운 들과 산굽이 떠돌며/ 스스로 잠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고/스스로 떠오르는 법을 익혔다(…) 그만큼 어디선가 희망이 자라 오르고/무심히 저무는 시간 속에서/누군가 내 이름을 호명 하는 밤/나는 너에게 가까이 가기 위해/빗장 밖으로 사다리를 내렸다/수없는 나날이 셔터 속으로 사라졌다/ 내가 꿈의 현상소에 당도 했을 때/오오 그러나 너는/그 어느 것에서도 부재중 이었다 /달빛 아래서나 가로수 밑에서/불쑥불쑥 다가왔다가/이내 바람으로 흩어지는 너/네가 그리우면 나는울었다. -고정희,`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이 아름다운 연시는 고정희 시인이, 퇴계 이황의 젊은 관기 애인인 두향과의 사랑과 이별을 생각하며 쓴 사랑의 시다.　 "길을 가다가 불현 듯/ 가슴에 잉잉하게 차오르는 사람/…(중략)달빛 아래서나 가로수 밑에서 불쑥불쑥 다가왔다가/ 이내 바람으로 흩어지는 너/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마치 젊은 시절 자주 썼던, 연애편지의 한 구절을 연상 시키는 시다.　 퇴계 이황은 48세 때(아홉 달 동안의 단양군수 시절) 18세인 어린 관기 기생 두향을 만난다. 　 두향은 총명했고 학문과 예술의 깊이가 예사롭지 않은 여인이었다. 또한 두향은 퇴계가 좋아하는 매화 꽃을 가꾸는 솜씨가 뛰어났다고 한다.　 두 번째 부인과 사별한 지가 2년 되는 해가 되는 퇴계와, 매화를 가꾸는 솜씨가 대단한 두향!　 매화를 좋아 하는 퇴계는 두향과의 운명적인 깊은 사랑에 빠진다. 　 퇴계가 짧은 군수 시절의 임기를 마치고 단양을 떠나는 전날 밤, 퇴계는 두향의 치마폭에 "죽어 이별은 소리조차 나오지 않고, 살아 이별은 슬프기 그지없다" 라는 시 한수를 지어 적어 준다. 그리고 단양을 떠 날 때 사랑의 정표로 두향이 퇴계에게 선물한 `분매 한그루`를 가마에 싣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퇴계는 숨을 거둘 때 까지 20년 동안, 두향의 혼이나 다름없는 이 매화를 연인 대하듯 애지중지 한다. 퇴계가 열반에 드는 날 아침, 퇴계는 유언을 한다. "분매에 물을 주어라" 　 저녁 무럽, 벽에 기댄 체 두향의 사랑이 가지마다 서려 있는 매화를 바라보며 퇴계는 조용히 숨을 거둔다. 한편, 두향은 퇴계가 죽자 그리움에 지친, 22년의 세월을 마감하고 강물에 몸을 던진다.　 진정한 사랑이란 어떤 사랑일까? 나도 잘 모르겠다. 아름다운 사랑이란 육체가 경험한 아름다운 기억을 정신위에 세운 집과 같은 것이다(수필가 구활, 남부문학, 2020에서)　 퇴계 이황!, 자신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고 벼슬에 연연하지 않았던 진정한 선비였다. 코로나로 참담한 요즘 세태 속에서 퇴계와 두향과의 애틋한 사랑을 생각하며 머리를 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