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이 부인은 여느 때처럼 새벽 네 시에 눈을 떴다. 정갈하게 소세를 마친 뒤 부엌으로 갔다. 대나무 그릇에 찹쌀을 담고 끓는 물 위 채반에 올이 고운 무영을 얹은 뒤 찹쌀 밥통을 올렸다. 저녁 시장에서 사온 과일들을 흐르는 물에 씻으면서 짜이 부인은 고요한 목소리로 경을 외었다. ◆ 업보 닦는 새벽 탁발 큰 아들 참파는 목소리가 굵어지기도 전 이유 없이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 후 짜이 부인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 탁발 시주에 나섰다. 남편은 부인의 새벽 공덕을 따뜻하게 후원했다. 부인이 부스럭거리며 침상을 털고 일어나면 헛기침을 보태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건넸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밥과 과일, 고소한 맛이 나는 과자를 시주 그릇에 담고 자줏빛 비단 보자기로 다소곳이 덮었다. 짜이 부인이 늘 가서 앉는 자리는 정해졌다. 집 앞의 거리에 나서면 손쉬울 일이지만 집에서 30분을 걸어 닿는 사원까지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어김없이 그 사원을 찾았다. 부인은 그 사원의 관세음보살에게 기원을 하고 난 뒤 참파를 얻었다. 시주 무리들 중 짜이 부인은 항상 제일 먼저 자리를 잡고 앉는다. 동녘에 햇귀가 밝아올 때까지 사원의 새벽예불을 등 뒤로 느낀다. 그리고 꿇은 자리에서 정좌한 뒤 탁발행렬을 기다린다. 오늘은 자꾸 가슴에 벅차오르는 기운을 느꼈다. 참파의 모습이 눈에 밟혔다. 녀석의 웃음은 누구보다 해맑았다. 학교에서 배운 서툰 영어로 외국인 여행자를 만나면 얼른 다가가 말을 걸고, 형이나 누나 또래의 서양 여행자를 집으로 초대해 놀라게 했던 아이였다. 정성껏 음식을 준비해 채반에 담아 나오면 여행자들 보다 녀석이 더 즐거워했다. 참파는 한 번도 싫다고 도리질을 치던 일이 없었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 들어오면 신발을 벗기고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 주던 아이였다. 그런 참파가 자꾸 눈에 밟힌다.　 ◆ 공덕 지어 평화 원하는 시주 멀리 탁발행렬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렌지색 가사를 보면 부인의 마음이 편안해진다. 담벼락을 끼고 이어진 시주 행렬은 다시 몸을 가다듬는다. 그러나 오늘 짜이 부인은 왠지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할 길이 없었다. 전에 없던 일이었다. 노스님이 부인 앞을 지나치며 발우를 내밀었지만 한 톨도 시주를 하지 못했다. 마음 한 켠에서 뜨거운 바람이 일었다. 우두커니 탁발행렬을 바라봤다. 참파를 그리워하는 일이 도대체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매일 동참하는 시주행렬은 참파의 혼령을 위로하고, 스스로 공덕을 지어 나머지 가족의 평온을 기리려는 뜻인데 왜 마음이 이토록 나부끼는 것일까. 정신이 돌아왔다. 더는 안 된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았다. 떠난 아이를 마음에서 보내는 것은 참파도 원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 때 어젯밤 머리를 새로 밀었을 것이 분명하게 파란 자국이 남은 어린 승려가 다가왔다. 참파가 살아 있다면 저 또래는 되었을 텐데. 승려의 얼굴은 몹시 우울해 보였다. 뭔가 근심이 있거나 외로움을 타는 듯했다. 짜이 부인의 마음에 뜨거운 것이 울컥했다. 자신도 모르게 시주 그릇에 담긴 밥과 과일을 그 승려의 발우에 모두 쏟아 부었다. 승려가 자신을 꿰뚫듯이 쳐다보는 눈빛을 느꼈다. 그리고 물 흐르듯 지나가는 행렬에서 우뚝 멈추는 발길을 감지했다. 승려의 발을 보았다. 짙은 갈색 발등에 서너 군데 모기에 물린 자국이 보였다. 참파가 떠나던 날 고이 쓰다듬었던 발이 생각났다. 자신도 모르게 두 눈에 눈물이 쏟아졌다.　 ◆ 나눔의 원리 작동되는 탁발 쩐의 옆집에 사는 친구 끼가 아프다. 끼는 매일같이 새벽에 산을 내려가 탁발 승려에게 음식을 얻어오던 아이였다. 끼는 며칠 전 산에 옥수수를 따러갔다가 발목을 다쳤다. 금방 나을 줄 알았던 발목이 자꾸 퉁퉁 부어올라 움직이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끼의 어머니는 오늘쯤에 끼를 업고 병원에 데려갈 참이라고 말했다. 끼가 음식을 얻어오지 못하면서 우리 동네 아이들은 하루 한 끼 먹기가 힘들어졌다.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라면 쩐이 하기로 했다. 끼보다 체구가 약하지만 그나마 새벽 산길을 내려가는 일을 해낼 아이는 쩐 밖에 없었다. 전날 끼는 쩐에게 음식을 얻기에 가장 좋은 위치와 방법을 상세하게 알려줬다. 탁발 행렬이 거의 끝나갈 무렵, 아침시장을 끼고 난 큰길에 서면 가장 많은 음식을 얻을 수 있다고 일러줬다. 스님들의 탁발이 마무리될 쯤 서는 것은 그 사이 스님들의 탁발을 방해하지 않는 의미도 있고 사원으로 돌아가기 전 하루치 음식만 남긴 후 다시 베푸는 스님들이 많다는 논리였다. 끼는 쩐에게 절대로 탁발행렬이나 시주행렬을 방해하지 말고 동네에서 까불 듯이 소란을 피워서도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산에서 내려오는 일이 거의 없던 쩐은 끼가 알려준 거리를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날이 밝기도 전 어둑한 길을 더듬으며 시장부근에 까지 다달았을 때 이미 탁발은 끝나가고 있었다. 얼른 시주행렬의 맨 마지막 자리에 앉았다. 빈 바구니를 앞에 두고 보니 염치가 없었다. 끼가 맡긴 동냥그릇은 터무니없이 컸다. 아무리 스님들이 자신들이 탁발한 음식을 자기와 같은 불쌍하고 가난한 아이들에게 나누어 준다고 해도 스님들의 발우보다 다섯 배나 큰 바구니를 내민다는 것은 쩐에게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쩐은 갈등했다. 다시 바구니를 집어 들고 골목길로 숨어들었다.　 ◆ 가난한 이도 함께 넉넉한 불교의 원리 골목에 숨어서 숨을 고르던 쩐은 자신을 기다리는 친구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동생 셋은 아침에 옥수수 가루를 볶아 공복을 메울 것이 분명했다. 쩐은 다시 용기를 냈다. 아까 그 자리에 다시 나앉았다. 스님들의 행렬이 다행하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옆에 앉은 아이의 바구니는 이미 가득 차 있었다. 쩐은 마음이 다급해졌다. 빈 바구니를 들고 돌아가면 끼가 놀릴 것이 눈에 훤했다. 아이들은 동구 밖에 나와 쩐의 바구니를 기다릴 것이었다. 그 때 한 스님이 쩐 앞에 섰다. 눈이 마주쳤다. 쩐은 윗니가 빠진 입을 열어 살짝 웃음을 전했다. 미안한 마음의 표현이었다. 스님은 발우를 들어 오늘 아침 탁발한 음식을 쩐의 바구니에 모두 쏟아 부었다. 쩐은 두 손을 들어 합장으로 스님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리고 스님은 행렬에 묻혔다. 스님의 발걸음이 둔탁하게 느껴졌다. 쩐은 바구니를 들어보았다. 끼가 들고 돌아온 바구니보다는 가벼웠지만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느꼈다. 욕심을 내면 또 다른 욕심이 생긴다. 욕심은 불행을 불러온다고 어른들이 말했다. 끼가 발목을 다친 것도 욕심 때문이었다. 옥수수를 따고 내려오던 산길에서 토끼 한 마리를 발견하고, 그 토끼를 쫓아가다가 발목을 접혔다. 이만하면 동네 아이들과 한 끼를 나눠먹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쩐은 탁발행렬이 다 끝나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을이 있는 산머리에 햇살이 걸쳐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