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문의 라오스로 소풍갈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될 자유가 있는 `루앙프라방`

공주를 호위하는 본진이 도착하기 전 파발이 먼저 달려왔다. 크메르의 공주가 곧 도착한다는 전갈이었다. 파응움왕은 크메르 공주가 자신에게 시집을 오게 된 것이 한 없이 기뻤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크메르 공주가 혼수로 가져오는 불상인 프라방도 함께 온다니 더할 나위 없이 설레었다. ◆ 크메르 공주가 혼수로 가져온 프라방 왕은 서둘러서 신하들을 이끌고 푸시산으로 올라갔다. 멀리 내려다보이는 남쪽 산길에 뽀얀 먼지가 일었다. 공주와 함께 이동하는 본진이 일으키는 흙먼지였다. 왕은 산에서 내려와 코끼리 위에 올랐다. 더는 가만히 기다릴 수 없었다. 왕과 공주는 도시 초입에서 조우했다. 왕은 공주의 손에 깊은 입맞춤을 선사했다. 그리고 본진의 깊숙한 곳에 모신 프라방 앞으로 다가갔다. 옷깃을 여미고 꿇어앉았다. 호위 장수가 프라방을 왕의 가슴에 안겼다. 왕은 눈물을 흘리며 경배했다. 프라방과 함께 왕궁으로 돌아온 왕은 그동안 `황금의 도시`라는 뜻의 씨엥통이라고 불리던 도시 이름을 `신성한 불상`이라는 뜻의 루앙프라방으로 바꾸기를 명령했다. 프라방은 1563년 비엔티안으로 천도하면서 함께 함께 옮겨졌다가 1779년 시암왕국의 공격을 받아 빼앗겼다. 하지만 1839년 다시 빼앗아 와 지금은 국립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 고색창연한 중세도시 루앙프라방 루앙프라방은 라오스의 원형질이다. 도시를 가득 메운 사원과 비교적 온전하게 보전된 프랑스식 건물들, 인근 산에서 내려온 고산족들의 문화가 비빔밥처럼 융합돼 있다. 가장 라오스다운 도시이며 라오스를 찾는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루앙프라방을 방문한다. 도시 전체가 고색창연해 중세도시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고 골목골목 나타나는 재래시장은 라오스 사람들의 삶의 진국이 진득하게 묻어난다. 한적한 메콩강변을 따라 느리게 걷다보면 무심코 이 도시가 참 로맨틱하다는 생뚱맞은 생각도 든다. 도시 전체가 주황색, 혹은 갈색으로 물들어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는 지구상에 흔하지 않다. 유럽의 중세도시들이 주는 화려함이라고는 눈곱만치도 보이지 않는다. 소박하고 절제된 성찰의 도시. 루앙프라방은 그렇게 내 마음속에 고요하게 자리 잡고 있다.　 ◆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될 자유 루앙프라방은 메콩강과 칸강이 절묘하게 교차하는 지점에 자리 잡고 소박하게 발전한 도시다. 라오스의 강은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메콩강과 동에서 서로 흐르는 그 지류들이 전부다. 누군가 라오스를 여행하는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될 자유` 때문이라고 표현한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말마따나 루앙프라방에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한나절이면 모두 돌아볼 수 있는 도시를 쉬엄쉬엄 걷는 일이 전부일 수 있다. 버스는 시내를 달리지 못한다. 그래서 오토바이나 툭툭이, 자전거만 다니기 때문에 걷기에 위험한 곳도 아니다. 신성한 도시에 분주하게 나대는 것도 루앙프라방에서는 불경스러운 짓이다. 루앙프라방의 소위 메인스트리트는 시사방봉 거리다. 이 거리에는 여행자들을 위한 다양한 숙소와 카페, 레스토랑이 운집해 있다. 하지만 방콕의 카오산로드나 카트만두의 타멜스트리트 같이 복잡하고 혼란스럽지 않다. 한낮의 뙤약볕이 내리쬘 때는 시사방봉 거리도 한산해진다. 이웃도시에서 방금 도착한 여행자들이 숙소를 찾아 헤매는 모습은 보이지만 이미 도착한 여행자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루앙프라방에 도착하면 이 도시를 어떻게 여행해야 하는지 금방 알게 된다. 젊은 여행자들은 40도를 오르내리는 한낮의 더위를 피해 도시에서 20km 떨어진 꽝시 폭포에 멱을 감으로 떠났을 것이고,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단위의 여행자나 더위에 지친 연로한 이들은 숙소의 발코니에 앉아 느긋하게 주스를 마시거나 낮잠에 빠져 있을 것이다.　 ◆ 소박하자민 아름다운 야시장 시사방봉 거리는 해거름에 활기를 되찾는다. 몽족이 벌이는 야시장 때문이다. 당국에서는 오후 5시부터 시사방봉 거리에 바리게이트를 설치하고 일체의 교통수단의 통행을 금지한다. 어둠이 깔리면 켜지는 야시장의 조명에 이끌려 여행자들은 부나방처럼 이곳에 몰려든다. 루앙프라방의 야시장은 인근 방콕이나 하노이의 야시장과 다르다. 지악스러운 상행위가 이뤄지지 않고 규모도 조촐하다. 몽족들은 자신들이 만든 수공예품을 늘여놓고 여행자들을 기다리고 여행자들은 그들이 보여주는 물건들을 바라보며 해찰을 부리다가 맘에 드는 물건이 손에 잡히면 지갑을 연다. 애써 가지런히 진열해 둔 물건을 이리저리 뒤적거리면서 실컷 구경만 하고 돌아가도 몽족들은 원망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도시 전체의 분위기가 그렇듯 루앙프라방의 몽족 야시장에도 여유와 낭만이 흐른다. 야시장 주변에는 먹을거리도 다양하다. 토스트, 샌드위치, 햄버거, 바게트, 크레페 등 외국인들이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에서부터 라오스 꼬치, 랍, 똠얌 등의 전통음식에 이르기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종류의 먹을 것들이 등장한다. 먹을거리와 볼거리, 그리고 살거리가 지천에 널린 야시장은 여행자들의 천국 중 하나다. 방콕이나 하노이, 심지어 비엔티안의 독버섯처럼 생겨나는 유흥가가 하나도 없는 신성한 도시 루앙프라방에서 야시장은 여행자들에게 가장 대중적 즐길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