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씨 빼기, 해바라기씨 개수 세기. 평범한 일상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부질없는 짓이다. 코로나19로 말미암아 지역 봉쇄령을 당했거나 외출금지령을 당한 중국인들이 감염병에 대한 공포와 답답함을 잊기 위해 하는 놀이라고 한다. 　 이뿐만 아니다. 빗자루 세우기 놀이도 한다. 빗자루를 세우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얼마 전 미 항공우주국이 중력이 약해져 빗자루가 스스로 설 수 있다고 발표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중국인들이 집안에 머물면서 이 도전에 나선 것이다. 이 소문은 가짜임이 밝혀졌지만 중국의 SNS에서는 실제로 빗자루를 세운 인증 사진들이 올라왔다. 빗자루뿐만 아니다. 국자·가위·칼 같은 길쭉한 물건을 세우기도 하고 심지어는 마스크를 세운 사진까지 올라왔다고 한다.　 또 다른 안타까운 이야기도 있다. 중국 SNS 웨이보에서는 `외출한 척하기 대회`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집에 있으면서도 마치 어느 여행지에 와 있거나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것처럼 꾸며 사진을 올리는 것이다. 어떤 이는 비행기 티켓을 손으로 그려 올리기도 하고 마작 패를 세워 콘서트장 객석처럼 배열한 사진도 올렸다. 감염병으로 격리된 상황은 언제 끝날지 모른다. 그 막막하고 지루한 상황을 넘기기 위한 중국인들의 안간힘이 가엽기도 하다.　 2003년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어느 날 술이 취해 집에 돌아가는 길에 연유를 알지 못하고 누군가에 납치돼 사설 감금방에 갇히게 된 샐러리맨의 이야기다. 8평의 감금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중국집 군만두를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전부다. 　 1년이 지난 무렵 텔레비전 뉴스에 아내가 살해된 소식이 전해지고 어처구니없게도 살해범으로 1년째 감금된 자신이 지목된다. 그는 복수를 위해 체력단련을 하면서 탈출을 위해 감금방 한쪽 구석을 쇠젓가락으로 파기 시작한다. 감금된 지 15년을 맞이하는 해 마침내 사람 몸 하나가 겨우 빠져나갈 정도의 탈출구가 생겼을 때, 어이없게도 15년 전 납치됐던 바로 그 장소로 풀려나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워낙 오래 전에 본 영화여서 디테일한 묘사는 기억나지 않지만 주인공이 군만두를 우걱우걱 먹는 모습과 쇠젓가락으로 탈출구를 파는 집요한 노력이 어렴풋하게 떠오른다. 물론 지금 외출금지령으로 집안에 머물고 있는 중국인들과 영문도 모른채 감금됐던 `올드보이`의 주인공의 처지는 다르다. 중국인들에게는 언젠가는 코로나19가 종식되고 자유의 몸으로 길거리를 누빌 수 있다는 가시적인 희망이 있고 `올드보이`의 사내는 다시는 햇살을 못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결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대구와 경북의 집단 감염 현상이 가파르게 확산된다면 대구·경북의 시민들도 상상하기 힘든 상황에 다다를 수 있다. 모든 생업은 중단되고 외부와의 접촉은 텔레비전과 전화로만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이 극단적인 유폐감을 느꼈을 때 이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딸기씨를 빼고 빗자루를 세울 것인가. 냉장실을 뒤져 냉동만두를 꺼내 프라이팬에 튀기고 가족끼리 둘러앉아 우걱우걱 씹을 것인가. 이 절망적인 상황에 맞닥뜨린다면 우리는 과연 이겨낼 수 있을까.　 참으로 불안하고 암담하다. 지난주까지만 하더라도 코로나19는 어느 정도 진정국면에 접어들고 있다고 느꼈다. 봄이 오고 꽃이 피면 그 감염병은 우리 곁에서 사라지고 화사한 기운으로 움츠렸던 경제와 모든 생활이 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기하급수적으로 확진자가 늘어나는 국면에 봉착했다. 이 상황을 넘기기 위해 우리는 단단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감염병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과 지나친 공포에서 벗어나는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의 처지가 쇠젓가락으로 탈출구를 파야하는 사내의 절박함과는 다르지 않는가. 차분하게 대처하면 이 위기 또한 넘어갈 수 있다. 세상에 극복하지 못할 시련은 없는 법이다. 당국의 대책을 믿고 따라준다면 이 어둡고 침침한 터널도 금방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