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과학은 엄청난 속도로 진보하고 있다. 그 분야에 도저한 식견을 가진 전문가가 아니라면 빛의 속도로 진행되는 과학기술의 걸음을 그냥 수굿수굿 따라갈 뿐이지 어떤 원리로 우리의 삶이 그 과학의 권능 속에서 편리해지고 있는지 짐작도 하지 못한다. 불과 10여 년 전의 세상을 살았다가 사라진 사람이 다시 부활해 온다면 현재의 생활환경을 본다면 까무러칠 것이 분명하다. 수천 년간 느린 속도로 발전하던 인류의 문명이 산업혁명 이후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다가 지금은 마치 광속처럼 내빼고 있다.　 그 템포가 비단 과학기술뿐이겠는가. 세상의 모든 것들, 이를테면 업무처리 속도나 사람을 사귀어 깊어지는 과정이나 심지어는 먹을 것을 조리하는 방법조차도 일각을 다툰다. 꼼꼼하게 손작업을 하던 사무 시스템은 모두 전산시스템으로 전환되고 있고 일회용 그릇에 담긴 인스턴트 밥이 마트에 빼곡하게 쌓여 있다. 피자나 만두를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는 것은 이제 구시대의 방식이고 온갖 조리식품들이 봉투채 데우기만 하면 마치 방금 조리한 것처럼 먹을 수 있는 세상이다.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은 대학 시절 필독서였다. 거기에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궤변이 담겨 있었다. 21세기에 찾아올 정보화 시대에 대한 예견은 당시 삶의 환경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컴퓨터를 활용한 정보화 시대를 넘어 모바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스마트 시대에 도래해 있다. 이 속도로 간다면 10년 후 인류의 문명은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지 평범한 사람은 짐작도 할 수 없다.　 이 속도로 따라가다 보면 도대체 내가 뭘하고 있는지 스스로 감당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 토론토대학교 경영대학원 샌포드 드보 교수는 자신의 연구에서 "속도에 쫓기는 사람들은 오히려 시간과 효율을 낭비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높은 타율을 자랑하는 야구선수는 타석에 들어서서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고 한다. 투수의 손에서 떠나 날아오는 공을 최대한 오래 바라보며 방망이를 최대한 늦게 휘두른다. 투수가 뿌린 공이 포수의 미트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그 아슬아슬한 순간까지 기다릴 줄 알아야 투구가 어디로 오는지 정확하게 판단해서 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든다면 패키지여행을 즐기지 않는 자유여행자가 훨씬 더 많은 경험을 한다는 논리다. 패키지여행에서는 새벽같이 가이드의 모닝콜에 깨어나 잠도 덜 깬 채 조식을 먹고 주섬주섬 짐을 챙겨 나와 투어버스에 오른다. 촘촘하게 짜인 유적지 중심의 여정에 따라 주마간산으로 단체사진을 찍고 허둥대다 보면 어느새 가이드의 계략에 말려 쇼핑센터에서 가짜 진주와 라텍스 제품을 고르고 있다. 하루 종일 긴박한 속도로 여행을 하고 숙소로 돌아와 일행들과 술잔을 돌리다가 늦잠을 자게 되고 다음날 아침 또 새벽 무렵 호출당해 피곤에 절은 여행을 하는 악순환을 거듭한다. 투어버스에 올라서는 모자란 잠을 벌충하기 위해 잠에 빠져들고 차창으로 지나는 낯선 도시 서민들의 삶을 한 컷도 기억하지 못한다. 4박5일에 동남아시아 3개국을 여행하고 왔다고 자랑하지만 도대체 거기서 뭘 보고 뭘 느꼈는지 회상해 보면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자유여행을 즐기는 사람은 가장 값싼 항공권을 구입하고 인터넷을 열심히 뒤져 가성비 좋은 숙소를 찾는다. 그리고 긴 시간을 낼 수 없다면 딱 한 도시만 골라 4일이든, 5일이든 머문다. 피곤해서 힘들면 늦잠을 자고 느린 속도로 걸으면서 그 도시의 구석구석을 살핀다. 골목과 시장, 박물관과 식물원을 보면서 그 도시의 시민들이 가진 정서와 교감한다. 비록 느린 속도의 여행이지만 훗날 그 여행이 준 감동의 여파는 길고 진하다.　 속도와 효율이 중요한 시대를 살고 있지만 그로 인해 침착하게 기다릴 줄 알고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는 사람들이 더욱 필요한 시대다. `더 빨리! 더 많이!`라고 외치는 시대가 왔지만 `어떤 일을? 어떻게?`라고 의문을 가지며 현명하게 살아가는 것은 그 어느 시대라도 변하지 않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 될 것이다. 반려견에게 먹이를 주면서 "기다려! 기다려!"를 외치며 길을 들이면서 정작 자신에게는 "빨리! 빨리!"라고 채근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모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