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피의자(被疑者) 공소내용 공개 문제를 놓고,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알 권리와 인권보호에 관한 논란이 뜨겁다. 누구나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 보면, `너는 그런 것은 몰라도 돼!` 라는 어른들의 말을 한 번 쯤은 들은 기억이 있을 것 같다. 과연 모든 정보는 공개되어야 하고, 특정 정보에 대한 공개 제한은 반드시 알 권리를 침해하는 비민주적 행위로 규정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그리고 특정 정보 공개를 놓고, 공공의 이익과 개인의 인권이 충돌할 때, 무엇이 정의이며 어느 쪽이 더 민주주의 정신에 부합하는가?　 여기서 공공의 이익과 개인의 인권 얘기가 나온 김에 어떤 예를 하나 들어보기로 한다. 아메리카 대륙의 고대 마야문명을 연구하던 고고학자들이, 산 채로 신의 제물로 바쳐진 것으로 추정되는 많은 수의 유골들을 발견하곤 몸서리를 쳤다는 것인데, 그러니까 아직 인간의 지성이 성숙하지 못했던 그 당시엔, 어떤 개인의 인권보다는 공동체의 이익이 우선될 수밖에 없었을 테고, 따라서 가뭄이나 역병(疫病)같은 공동체의 재앙을 피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살아있는 인간을 신의 제물로 사용했다는 얘기가 아닌가?　 인류의 지성이 그 때보다 조금은 성숙한 지금, 오로지 공동의 이익만을 위한 개인의 희생이란, 이 지구상 대다수의 문명사회에서는 강요되지 않는 일로 안다. 범죄 현장에서 바로 체포된 흉악범이 아닌 다음에야, 법이 정한 절차를 거쳐 범죄사실이 확정되기 전까지의 피의(被疑) 사실이란 어차피 추정단계일 수밖에 없기에, 현재 법은 `피의자 무죄추정의 원칙`을 기본으로 하고 있지 않은가? 사람은 누구나 감추고 싶은 행위가 있겠지만, 타인의 행위에는 호기심이 많다. 그 호기심이 인간의 속성일 수는 있지만 권리에 해당하지는 않을 것이며, 더구나 그 호기심이 구체적인 행동으로 표출되어 타인에게 피해를 입힌다면 그것은 도리어 범죄가 된다.　 그 대상이 개인이든 기관이든 간에 사법기관이 특정 범죄사실을 의심하였다면 얼마든지 수사에 착수할 수는 있겠지만, 수사행위는 의심이고, 의심은 추정일 뿐이기에 범죄 사실이 확정되기 전 까지 기소 내용이 유포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법리를 떠난 인권의 문제가 아닐까? 왜냐하면 피의자는 재판 결과 무죄임이 밝혀져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불가역적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위치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일반인들이 자신의 어떤 나쁜 목적에 의해 타인을 무고하였을 경우 반드시 무고죄의 처벌을 받게 되는 것인데, 만일 기소권자가 고의(故意) 혹은 과실(過失)에 의해 무고(誣告) 기소를 하였을 경우에는 어떤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나는 단 한 번도 기소의 부당함으로 기소권자가 처벌을 받았다는 사례를 알지 못하니, 사실이 그렇다면 이것은 현재 우리 사법 체계의 중대한 맹점이 아닌가? 즉, 대상이 누가 되었든 기소권자가 특정인을 지목하여 일방적으로 기소하기만 하면, 이미 피의자는 유무죄와 상관없이 돌이킬 수 없는 막심한 물적 정신적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일인데, 더구나 확정되지 않은 피의사실까지 공공의 매체를 통해 유포되었을 경우, 그것을 대중의 알 권리라는 말로 정당화 할 수 있는 것일까?　 지금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체제의 OECD 경제대국이며 문명국가이다. 높은 대청마루에 붉은 관복을 입고 앉아 `니 죄를 니가 알렸다!` 호통치며, 없는 죄라도 자백을 할 때까지 주리를 틀던 조선시대가 아니라는 말이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열 사람의 범인을 놓쳐도 한 사람 무고한 범인을 만들지 말라`는 말은 다 아는 것이지만, 죄는 차치하고 사람을 미워하거나, 한 사람을 범인으로 만들기 위해 열 사람의 무고한 사람을 괴롭히는 그런 사법집행이 있다면 정말 공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알 권리가 아무리 소중해도 인권보다 소중한 가치는 아닐 것이며 공공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희생이 묵인된다면, 다음에는 우리 자신이 바로 그 공공의 제물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