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괴물에게 내 오빠의 이름을 부르고 싶지 않아요. 저것에서 벗어나야 해요. 저것을 돌보고 또 참기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지요. 우리를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라고 여동생이 말한다. 　 그레고르는 식구들에 대해서 감동과 사랑으로 돌이켜 생각해보았다. 자기가 없어져야 한다는 생각은 여동생보다 확고했다. 교회의 탑시계가 세 시를 칠 때까지 그는 공허하고 평화로운 명상에 잠겨, 세상이 환해지는 것을 느끼며 숨을 거둔다. 파출부는 그 물건을 치워버렸다며 생색을 낸다. 이제 가족들은 휴가를 내어 전차를 타고 야외로 나간다. 새로운 꿈, 밝은 전망, 따스한 햇살, 훌륭한 계획이 그들을 맞이한다며 소설이 끝난다. 신입사원 예진, 그녀는 엄마에게 연휴동안 일을 해야 한다고 거짓말했다. 입사 시험에 합격했을 때, 축하 끝에 했던 엄마의 요구가 마음을 짓눌렀다. 처음 들었을 때 엄마가 농담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의 요구는 빚 독촉하듯 집요했다. 그녀는 그레고르와 자신이 같은 처지에 놓인 듯한 괴로움에 빠졌다. 첫 월급을 탔으니 고향집에 내려갈 때는 엄마의 요구를 들어줘야했다.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체한 듯 답답했다. 컵 라면 하나로 점심을 때우고, 비가 청승스럽게 내리는 창밖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으니 떡가래를 구워먹던 어릴 적 생각이 났다.  　 그토록 염원했던 취업을 했지만 서울에서 봉급을 받아 살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월세가 상당 부분 나갔고, 원룸 보증금과 학자금 대출금을 갚고 나면 생활비가 빠듯했다.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들 대개도 같은 사정이었다. 예진은 귀에서 맴도는 엄마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듯 체머리를 흔들었고, 곧 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울적한 기분을 달래려했다. 　 빗줄기는 더 거세어졌다. 비 맞은 다람쥐 꼴을 한 세 명의 여자가 커피숍에 모였다. "떡국은 먹었니?" "집에도 못 가고, 참 처량하지?" 등의 인사가 오갔다. 예진이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 나도 한숨 밖에 안 나" 가정 형편이 어려운 상황에 육아휴직을 한 친구 A의 말이었다. A가 자신도 심란하다며 핸드폰을 내밀었다. "함 읽어봐. 넌 어떻게 생각하니? 요즘 인터넷에 비슷한 버전으로 많이 나돌아 다녀"　 하나는 결혼한 자식이 부모의 재산을 야금야금 빼먹어서 오갈 곳 없는 노부부가 자살한다는 익히 아는 내용이었고, 또 하나는 명절에 집에 오는 아들에게 보내는 엄마의 편지였는데, 듣기 거북한 내용의 골자는 이랬다. 　 나 찾지마라. 깨끗이 치워놓은 거실 너 왔다가고 나면 엉망이다. 30평생 네 입에 맞는 반찬 준비한다고 힘들었다. 김치해줄 꺼지? 묻는 네가 징그럽다. 니들이 좋아서 만든 자식 나한테 넘기지 마라. 네가 낳은 자식은 네가 키우는 게 맞다. 내꺼 니꺼 분명히 하자. 나도 내 인생이 있다. 　 "누가 보내주더니?" 예진이 물었다. "우리 엄마…" A가 말끝을 흐렸다. "네 엄마 손주 양육 거절했다면서. 또 부탁했니?" "어, 어쩔 수가 없잖아. 넌 좋겠다. 미스라서 짐도 없고"　 "마찬가지야. 난 엄마가 200만 원 넘는 명품 핸드백을 요구해서 집에 못가고 있어"　 예진이 더 큰 한숨으로 대답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다른 친구 B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시대가 변했잖아. 옛날 우리나라 한국 어머니 상을 요구해서는 안 돼. 그들도 보상을 받아야지. 고생고생해서 키워주고 대학까지 시켰는데 첫 월급타서 그 정도도 못해줘?"　 예진의 입이 쑥 들어갔다. 그러나 월급 전부를 털 수도 없는 형편이었고, 첫출발을 하면서 카드빚을 쓰고 싶지 않았다. 　 "이런 식이라면 이제 명절에 서울서 부산까지 고향 찾아갈 필요 없겠네. 손주들이 집 어지럽히는 게 싫은 데, 생전 안 보고 살면 되겠네." 　 육아휴직을 한 친구가 울부짖듯 말했다. 예진이 물었다. 　 "카프카의 소설처럼 우리가 만약 벌레로 변신한다면 우리 가족의 반응은 어떨까."　 친구 B가 되레 물었다. 　 "아니. 너희 부모가 벌레로 변신했다면 너들은 어떻게 할 것 같니?"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예진은 밑줄을 그었던 카프카의 문장을 떠올리려 애썼다.　그레고르에게 한 달 이상이나 고통을 주었던 상처는―아버지가 던진 사과가 등에 박힌―그레고르의 현재 모습이 비참하고 역겹게 보일지라도 그 역시 한 식구이니 원수처럼 취급해서는 안 되고, 증오심을 억누르고, 참고 또 참는 것만이 가족이 지킬 의무의 계명이라는 것을 아버지에게 주는 것 같았다.　예진이 윗글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일 년 할부로 핸드백을 사면 한 달 불입금이 얼마인지 계산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녀의 무의식 속에서 그것이 의무가 아닌 사랑의 행위가 되기를 간절히 바랐는지 모른다. 이 이야기에 덧붙일 말이 떠오른다.　물에 비치면 얼굴이 서로 같은 것 같이 사람의 마음도 서로 비치느니라 `잠언 27:19`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잠언 23:25`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에베소서 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