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설 명절 연휴에 있었던 신입사원 예진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귀향을 포기하고 서울에 남은 그녀는 침대에 드러누워 빗소리를 들으면서 카프카의 단편선집 `변신`을 읽고 있었다. 오랜만에 휴식과도 같은 독서를 하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설 연휴 동안 집에 가지 않는다고 했을 때 무척이나 서운해하던 엄마의 푸념이 머리를 헤집고 다녔다. 빗방울이 흘러내리는 창문을 바라보던 그녀는 다시 책을 폈다. `영업사원 그레고르 잠자가 자신이 벌레로 변한 것을 인식하고 방을 두리번거리다 창밖으로 눈길을 돌렸을 때, 창턱 함석 위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 그를 온통 우울하게 만들었다`는 서두였다. 비가 바람을 몰고 와 창문을 흔들고 그녀도 벌레가 된 그레고르만큼이나 우울했다. 　 매일 새벽에 기차를 타고 출장을 다니며 가족을 부양해온 그레고르는 자신이 벌레가 된 사실에도 불구하고 오직 일하러 가야한다는 의무감뿐이었다. 영업사원으로 온갖 사람을 만나는 일이 싫었지만, 천식에 걸린 어머니와 여동생 공부와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의 빚을 5, 6년 더 갚아야 하는 처지였으니 집을 찾아와 추궁하는 지배인에게 곧 나가겠다고 말한다. 그의 말은 사람의 소리가 아닌 동물 소리라서 아무도 알아듣지 못한다. 그레고르는 누구와도 소통되지 않는 소외와 고립에 처한다. 　 소설은 첫 행에서 그레고르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한 마리의 커다란 벌레로 변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녀는 늘 불안한 꿈을 꾸는 자신도 어느 날 무언가로 변신한다면…하고 중얼거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터무니없는 임금에 신입이라 배워야 할 업무량이 많기도 했지만 그레고르처럼 그녀도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았다. 자신도 도구가 되어 회사에서는 일 벌레, 집에서는, 특히 엄마의 돈 벌레가 되어 종국에는 그레고르처럼 말라서 고독하게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레고르는 벌레로 변신하고서야 아버지가 몰래 비축한 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적지만 이 년 정도는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돈이었다. 그 돈으로 하루빨리 빚을 갚을 수 있었다는 애석한 생각이 들었지만, 착한 그레고르는 자신이 생활력이 없는 지금으로서는 다행한 일이라고 스스로 위로한다. 아버지는 왜 힘든 그레고르에게 그 돈에 대해 함구했을까. 어느 카프카 비평가도 건드리지 않은 그 점에 불쾌감 같은 감정이 옮겨 붙었다. 그 생각은 그녀를 짓누르는 엄마에게로 이어졌다. 그레고르 아버지의 비자금과 엄마의 요구는 비릿한 냄새를 풍겼다. 소설의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선 상에서 해석하고 싶은 것은 보편적인 감정이리라. 　 가족에게 그나마 최소한의 보살핌을 받던 그레고르는 삼 개월 쯤 지나면서 아들과 오빠가 아닌 완전한 벌레로서 그것, 저것으로 취급받는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음악학교를 보내주려 했던 여동생이었지만, 이제 오빠가 아니라 괴물이라고 한다.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신하고서야 비로소 아버지는 은행사환으로, 어머니는 양장점에서 일감을 가져오고, 여동생은 점원으로 나선다. 어느 날 여동생의 바이올린 연주를 들으려고 거실로 나온 그레고르 때문에 대소동이 일어난다. 아버지는 벌레에 대해 살의를 가지고 발을 쳐들었고 그레고르는 피했는데, 아버지가 계속 던져대는 사과를 맞은 그레고리의 상처는 한 달 이상이나 고통을 주었다. 아무도 박힌 사과를 빼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