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대한(大寒)이 지났다. 이 때쯤이면 한 겨울이기에 무척 추울 터인데 날씨가 차갑지 않아 내한(耐寒)의 고통은 느껴볼 수 없어서 다행스럽기도 하다. 무서운 찬바람이 몰아치는 가교사 판자벽에 스며드는 냉기를 참으면서 공부했던 1950년대 중반 경주중학시절을 생각해보면 지금도 발가락에 한통(寒痛)이 오는 듯하다. 본 건물은 육군병원으로 사용하고 있어서, 중학교 3년은 북천 세찬 바람을 마시면서 참고 견디며 공부하였으니, 지금 생각하면 시베리아의 동토(凍土)에서 훈련을 받았던 기분이다.　 비록 허술한 내복을 입고 추위에 떨며 공부할 수 있었다는 것이 무슨 특권을 누리는 선량이라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경제적 빈곤 때문에 중학교에도 다닐 수 없었던 동료에 비하면 경주중학교 복장을 하고 학교 다닌다는 것이 대단한 특혜가 아닐 수 없었다.　 6·25동란이 정전은 되었으나 초도가 되어버린 국토에 재건을 위한 노력을 힘겹게 하면서도 일제(日帝) 때 못 배운 한을 풀고자 인재를 기르는 것이 부국의 근본임을 깨닫고 부군(府君)께서는 고생하셨지만 자식은 배울 수 있도록 육신의 고통을 참으면서 우리의 부모님은 인(忍)자를 가슴에 안고 만난(萬難)을 참으셨던 것이다. 　 공자는 `백행지본(百行之本)은 인지위상(忍之爲上)이라`했다. 인간의 여러 행실 가운데 참는 것이 상책(上策)이라고 가르쳤다. 참는 것이 어째서 으뜸이 되는 가는 쉽게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흔히 말하기를 "참을 것을 참아야지 아무것이나 다 참을 수는 없다" "참는데도 한계가 있다" 라는 말에서 인내의 어려움이 발견된다. 　 그래서 공자의 제자인 자장(子張)이 "어째서 참아야 합니까?"하고 스승인 공자에게 참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물었다. 그 물음에 공자는 "천자(天子)가 참으면 나라에 해가 없을 것이고, 제후가 참으면 땅이 커질 것이고, 관리가 참으면 지위가 올라갈 것이고, 형제가 참으면 집이 부귀해 질 것이며, 부부가 참으면 해로(偕老)할 수 있을 것이고, 벗끼리 참으면 명예를 잃지 않을 것이요, 자신이 참으면 재앙이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이 말씀에서 보면 인(忍)은 국가. 국토, 지위, 부귀, 해로, 명예, 재앙과 관련되고 있음이 발견된다. 참을 것인가 말 것인가에 따라 이들 키워드(key word)가 이루어지기도 하고, 엄청난 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내포되고 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참는다는 것은 장난같이 쉬운 일이 아니다. 참음을 나타내는 `인(忍)`자를 모면 인(忍)자는 칼날을 상징하는 `인(刃)`과 심장을 상징하는 `심(心)`자가 합해져서 이루어진 모양을 나타내고 있다. 심장에 칼을 꽂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인자는 아픔의 극치를 나타내고 있다. 심장에 칼날이 꽂히면 그 아픔이야말로 죽음에 이르는 것이니 고통의 정도가 극한치가 아닐 수 없다. 인자가 상징하는 자의에서 보면 참는다는 것은 심장에 꽂힌 칼날이 주는 아픔을 참는 것과 같이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참기 어렵더라도 참고 보면 그것이 으뜸이 된다하였으니 오늘날의 사회 현상 가운데 참기 어려운 세상사가 많이 있다하더라도 직접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없다면 심장에 칼날을 꽂아 발분망동하지 말고 참는 것이 정답일 것 같다. 　 굴욕적인 언사를 들었을 때는 급한 성질이 치밀 수 있다. 한신은 가랑이 밑을 지나가는 수모 즉 과하지욕(袴下之辱)을 당하고도 훗날 유방이 한나라 건국할 때 공헌을 하였던 것도 인으로 견모불욕(見侮不辱) 즉 업신여김을 당해도 치욕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인을 이룬 데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인지위상(忍之爲上)을 이루기 위해서는 과하지욕(袴下之辱), 견모불욕(見侮不辱)의 의미를 재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고 외람되나마 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