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출직인 정치인과 임명직인 공무원은 공히 특수 권력관계에 놓인다는 점에서는 유사한 면도 있지만, 국민에 의한 권력 위임과정과 공무 수행 상 업무 성격에는 분명히 구분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내 기억으로,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되기 이전인 과거 군부정권 시절에 지방의 군수는 서기관급 임명직 공무원에 불과했으며, 시장 역시 단순한 고위직 공무원 신분으로, 아무도 중앙정부에서 내려 보낸 임명직 공무원을 정치인으로 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그 후 문민정치가 시작되면서 각 지방 자치 단체장이 선출직으로 바뀜은 물론 지방의회가 만들어진 것인데, 의회는 그렇다하더라도 군수나 시장을 지역 주민이 직접 선출한다고 해서, 의정활동이 주 업무인 순수 정치인과 지역 행정 업무를 총괄하는 단체장을 뭉뚱그려 같은 정치인으로 취급할 수는 없지 않을까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러니까 기초의원이든 국회의원이든 간에 정당정치제도 하에서 정치인은 정당의 당리당략(黨利黨略)으로부터 전혀 자유로울 수가 없지만, 지방자치 단체장은 소속 정당의 이익에 앞선 지역의 행정 수반으로, 해당 지역 주민 모두를 공히 아우를 업무상 책임이 있다는 점에서, 단체장을 정당이 공천하고 또 정당 소속으로 두는 것이 과연 진정한 민주주의 정신에 부합하는 제도인가에 대한 의문이 없지 않다. 아무튼 지자체 장은 어떤 경우라도 개인의 어떤 정치적 성향과 자신이 소속된 정당의 이익을 위한 편파적 언행과 업무의 편향성을 가져서는 아니 될 것인데, 만일에 그러한 단체장이 있다면 그는 당장 권한을 내려놓고 순수한 정당 정치인의 길로 나아가는 편이 옳지 않을까 한다. 더구나 조금은 특수해 보일정도로 정치적 편향성이 심각한 우리 지역의 정치지형 상, 고질적 지역 갈등을 해소하고 지역의 통합을 위해 노력해야 할 단체장조차 엄정한 정치 중립을 지키지 못한 채 만일 어느 쪽으로 심한 편향성을 보이게 된다면, 지역 분열은 더욱 가속화 되고, 선별된 동질(同質)의 사람들을 제외한 나머지 주민들은 모두 이 지역을 떠나 타 지역으로 망명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지방정부의 수장은 한 사람 정치인이기 전에 한시적 행정 권한을 주민으로부터 위임받은 별정직 공무원과 같은 신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때문에 정당인이면서도 우리 법은 선출직 공무원을 포함하는 모든 공무원의 선거 개입을 배제하고 엄정한 정치적 중립 의무를 요구하고 있지 아니한가? 물론 정치인이나 공무원들뿐만 아니라 지역의 주민들도 자신의 뜻을 대의(代議)할 선출직 정치인과 오직 주어진 행정권한으로 행정업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을 구분해야 할 것이며, 선발을 위한 변별기준도 달라야 할 것이다. 즉,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따른 진영 논리에 의해서만 자신의 주권을 행사한다면 절대로 좋은 정치인, 좋은 공무원을 선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왕조시대의 공직자는 모든 권력의 주체인 왕이 부여해준 권력을 대리 행사하는 위치였기 때문에 벼슬자리로 높이 받들어 졌고, 심지어 지방 관리들을 목민관(牧民官)이라 칭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주민은 가축처럼 길러지는 다스림의 대상일 뿐, 서민의 인권이란 한낱 권력자 발바닥의 각질만도 못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인류사회의 보편적 가치로 자리매김 되고 있는 모든 민주국가 권력의 주체는 시민이며 국민이다. 따라서 모든 공직자들을, 대중이 위임해준 권력의 대리인이라는 뜻에서 흔히 공복(公僕)이라고도 부른다. 특히 지역의 살림살이를 맡은 지자체장은 오직 집사장의 위치에서 주민 위에 군림할 수 없으며 모든 주민들에게 불편부당(不偏不黨)한 행정서비스를 해야 함은 새삼 강조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다. 우리는 아직도 시 행정기관이나 도 행정기관 등에 위압감이 느껴지는 청(廳)자를 붙이고 있는데, 영어권에서는 시청을 City hall(시민이 모이는 건물)로 호칭한다는 점에서 좀 더 주민들이 친근감을 느낄 수 있는 새로운 이름을 생각해볼 의향들은 없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