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빛 조명을 무대로 비쳐지는 이용주 작가의 작품들 하나하나에는 혼이 서려있었다. 이 작가가 2014년 경북 경주시 대륭원에 건립한 `혼(魂)자수 미술관`의 풍경이었다. 혼을 담아 세상의 아름다움을 비단천에 수를 놓는 다는 뜻의 이곳은 하얀 하늘이 있어야 할 공간조차 빈 여백을 허락하지 않는 이 작가의 작품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 `파이프물고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은 빈센트 반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르고 그린 자화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굵기가 다른 비단실로 입체감이 살아나면서 관람객의 움직임에 따라 자화상이 전하는 에세이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자화상에선 밝은 색상을 쓰는 반 고흐만의 방식이 그대로 살아있지만 관객이 서 있는 위치에 따라 그가 갖고 있는 분노와 좌절, 슬픔 등이 고스란히 살아났다. 이것만이 아니다. `혼자수 미술관`에는 이 같은 이 작가만의 혼을 담아 한 땀 한 땀 수를 놓은 모든 작품에서 살아있는 듯한 생동감을 전했다. 3층과 2층 로비에 빼곡히 전시된 작품들로 정신을 빼앗겼지만 이를 추스릴 시간은 없었다. 티테이블이 놓여진 마지막 공간에 이르자 이번에는 거대한 천에 교차로 풍경 사진을 혼자수로 담은 작품이 관람객을 반겼다. 실제로 사진을 보는 듯한 착각을, 그렇지만 창문을 투과한 빛의 방향에 따라 또다른 느낌을 전하는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숨을 멎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작은 바늘에 비단실을 꿰어 혼자수를 놓는 이 작가의 작품은 짧게는 2년, 길게는 5년에 이르러서야 탄생한다. 그만큼 이 작가가 작품 하나하나에 혼신을 기울인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작가는 "작은 바늘에 비단실을 꿰는 그 순간의 전율은 어떤 것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며 "넓은 비단천은 또 하나의 세상이다. 그런 공간에 한 땀 한 땀 수를 놓는 것은 어쩌면 제 인생을 설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혼신의 힘이 담긴 이 작가의 작품은 세계적인 저명인사들이 갖고 싶어하는 소장품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14명의 전·현직 국가원수급과 프란치스코 교황, 작곡가이자 음악감독인 `엔니오 모리꼬네`, 가수 `셀린 디온`과 그룹 `블랙 아이드 피스`, 이탈리아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 등이 대표적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알제리 대통령궁을 비롯해 백악관, 오스트리아 국립 벨베데레미술관, 요르단 왕궁, 이스탄불시청 등 세계 여러 기관에서도 이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섬세한 부분에까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비단실로 담아내는 이 작가만의 고집이 세계 유명인들의 관심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 처럼 자수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전하고 있는 이 작가. 그러나 그런 그도 지금에 이르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이 작가가 자수를 처음 만난 것은 고등학생 때였다. 우연히 자수 작업을 위한 밑배경을 그려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면서 자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그는 표현하고자 하는 그림을 색까지 정확하게 비단에 그린 다음 그 위에 색실로 수를 놓는 우리나라 전통 `가색자수`를 완성시켰다. 그렇지만 그는 자수로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는 미래의 꿈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직장에 취업해 사회인으로써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다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싶다`는 목표를 세우면서 자수의 `명인`으로서 초석을 다지게 된 것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공방을 차린 이 작가는 자신만의 자수법을 찾기 위해 연구에 몰입했다. 질감을 살리기 위해 비단실을 느슨하게 꼬거나 뚜껍게 꼬는 등 실의 사용법에 변화를 줬고, 입체감을 살리기 위해선 실을 여러변 겹쳐 엮는 자신만의 방식을 개발했다. 또한 모방을 방지하기 위해 2002년 `사실감이 풍부한 손자수 방법`으로 실용신안등록을 했고 2004년에는 특허까지 받았다. 그렇지만 이 작가의 작품이 어떤 자수 작품보다 눈에 띄는 것은 이런 이유만은 아니다. 그는 작품 하나하나에 모든 열정을 쏟는 그야말로 `사생결단`의 각오로 매진한다. 비단천에 그려진 밑그림 위로 촘촘히 비단실을 놓는 그는 단 한 순간도 의자에 앉아서 작업을 하지 않는다. 더욱이 작은 부분까지 놓치지 않기 위해 허리를 숙이며 대형 돋보기를 눈에 달고 살았던 그는 한때 무릎 관절과 허리, 눈, 치아 모두에서 이상신호가 감지돼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료를 마친 지금도 과거의 방식을 고집하고 있는 그는 그 이유로 `혼`을 강조했다. 이 작가는 "자수는 정성이 어떻게 적용됐냐에 따라 달라지는 마법과 같은 작품"이라며 "모든 예술가에겐 자기만의 작품을 만들기 위한 방식이 있기에 저 역시 과거의 방식을 고집할 수 밖에 없다. 자수의 아름다음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더 많은 정성을 들여 작품에 임할 생각이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