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라 하면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가 벌레로 변해있었다는 중편소설 `변신`을 대번 떠올릴 것이다. 카프카는 오스트리아 헝가리의 유대계 작가로서 인간 운명의 부조리, 인간 존재의 불안을 통찰한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이다. 그는 보험공사에 다니며 불안과 고독 속에서 글을 썼다. 폐결핵을 앓아 여러 곳으로 요양 다니면서도 장편`성`과 `배고픈 예술가` 등 여러 단편을 썼고 결국 요양원에서 숨졌다. 그토록 성에 가려고 갈망했지만 소설이 끝날 때까지 성에 들어가지 못하는 측량사나 배고픈 예술가나 벌레가 된 그레고르 잠자를 생각하면 카프카의 고독하고 불안했던 삶이 떠오른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남자 기수들을 위한 숙고`는 경쟁 속에 살며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짧은 소설이다. 짧은 소설이라 하면 우리나라의 계간지 `문학나무`가 요즘 문단의 기수로서 200자 원고지 30매 이하의 스마트 소설로 박인성 문학상을 수여한다. 단지 몇 페이지의 글로 상금 500만 원을 받는 수상자는 우연히 경마장에서 내기에 건 말이 우승을 차지한 기분일 것이다. 그러나 벌써 100년 전에 카프카도 짧은 소설을 썼다. 불과 다섯 행에서 한 페이지 분량의 짧은 소설로 그의 놀라운 사유에 흠뻑 빠지게 한다. 아무튼 오늘날 같은 스마트 시대에 스마트 소설 한 페이지를 읽고 자신을 고통 속에서 스스로 건져낼 수 있다면 행운이다. 그런 남자가 있다. 그러면 프란츠 카프카의 전집 1권을 손에 든 남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남자의 마음은 지옥 같았다. 신년식 모임에 간 남자는 여러 축하할 소식을 들었다. 어느 친구는 승진을 했고, 또 다른 친구는 아들이 S대학에 합격했다고 하자 입을 닫고 있던 다른 선후배도 서로 다투듯 기쁜 소식을 전했다. S대는 아니라도 인서울만 해도 감사하다는 후배, 아들이 로스쿨에 들어갔다는 선배, 딸이 교수가 되더니 신랑감이 줄을 섰다는 둥 모두가 기쁨을 이기지 못했다. 남자는 축하를 하면서도 아직 미래가 불확실한 취준생 아들을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떠올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자신은 지금껏 살아오면서 성실했고, 어쩌면 혼신의 힘을 다해 열심히 살아왔다. 그러나 승진도 하지 못했고, 이렇다 할 생의 업적이라 할 만한 것을 남기지 못했고, 더구나 여생을 평온하게 붙들어줄 삶의 깨달음 같은 것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 같이 행복해 보였고 모두가 열심히 산만큼의 복을 누리더라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고등학교 선배 하나가 구석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조용히 듣고 있다가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선배는 남자를 보고 미소를 지었는데, 순간 남자는 선배의 얼굴에 흐르는 평정심을 보았다. 눈에 보이는 대단한 성공은 없어도 언제나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 얼굴에 겸허함이 풍겼는데, 삶에 내공이 쌓인 사람 특유의, 어딘가 달관자의 모습을 풍겼다. 남자는 선배의 미소를 흉내 내어 빙긋이 웃으며 속말을 했다. 그래, 최소한 저런 모습이어야 해. 남자는 자신의 빈한한 처지를 비관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집으로 돌아왔는데, 하늘에서 성령이 임했는지 신앙생활에 게으르던 그가 방에 들어가자마자 성경을 펼쳤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는 것일까.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가 벌떡 일어나 책장 앞에 썼다. 하늘에서 내려온 손 하나가 낡은 서가에 꽂힌 카프카 전집을 빼내는 광경을 그려보라. 자괴감에 빠져 잠깐 의기소침하던 남자의 손에 공중 투하된 난데없는 카프카 전집 1권. 남자는 38p를 폈다. 늘 경쟁 속을 달리는 경마 기수의 고뇌와 깨달음이 적혀 있다. 　 카프카는 첫 문장에 이렇게 썼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경마에서 일위가 되고자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남자는 곰곰이 생각하지 않으면 깨달을 수 없는 글임을 인식하며 문장을 읽어 내려갔다. 　교활하고 질투심으로 말고삐를 거머쥔 기수들의 경쟁심이 말발굽으로 땅을 갈라놓을 듯하다. 대개의 친구는 승산이 보이는 말에게 돈을 건다. 가장 좋은 친구들은 우리들 말에 돈을 걸지 않는다. 그 이유는 내기에 돈을 잃고 친구를 원망하게 되지는 않을까 두려워서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겨 옆을 지나갈 때 돈을 벌지 못한 그 친구들은 우리를 환호하지 않고 몸을 돌려 관중석을 바라본다. 이것이 가장 좋은 친구들의 모습인가? 우승기수는 친구를 잃은 듯 씁쓸한 마음이 들 거라고 남자는 중얼거렸다.　뒤처져 들어온 기수들은 자신이 실패한 원인을 생각하며 활기찬 모습을 보여준다. 마치 이건 어린아이 장난이었고 다음에 시작할 경기야말로 진정한 경기라는 듯 스스로 격려하면서. 거기에 비하면 우승한 기수들은 뽐내는 가운데도 태도가 우스꽝스럽다. 계속되는 악수세례, 축하에, 멀리까지 인사를 보내느라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러는 사이 패자들은 입을 다문 채 흥흥대는 말들의 목덜미를 가볍게 토닥거리고 있다.남자는 패자의 여유로운 모습에 마음이 갔다. 카프카가 이런 말을 한 것은 아니지만 인생은 새옹지마, 승자와 패자는 항상 바뀌고, 하나님은 인간 개개인에게 맞는 능력을 주셨다. 남자는 이제 완전히 기운을 차리고 성경 구절을 소리 내어 읽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4장 13절`　우승기수에게 기쁨은 정작 다음날 찾아온다고 한다.―남자는 카프카의 문장에 자신의 말을 덧붙였다―그 기쁨은 차라리 다른 것으로 찾아온다―기수가 일위가 되어 들어오면 오케스트라가 연주되는데 그 음악이 다음날―어쩌면 시간이 지날수록―마음속에 울려 퍼지며 기쁨을 준다는 것이다. 승리 자체보다 장대한 오케스트라가 기억에 남는다는 말을 새겨볼 일이다.　 인생은 정작 훗날, 내가 병상에 누워 자신의 생을 돌아볼 때 느끼는 기쁨이 진실한 기쁨이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고 거짓 없이 선한 마음으로 살려고 신을 섬겼다는 것. 그리고 내게 주신 능력 안에서 실패도 하고 성공도 하면서 살아왔다는 사실을 스스로 대견해하면서 신에게 손들고 나가는 마음이 승자의 마음이다.　 남자가 이런 생각을 하며 무거운 카프카 전집을 들고 가만히 허공을 응시할 때 아마 그의 귀에도 오케스트라의 성가곡이 흘러나왔을 것이다. 그 남자가 바로 경기에서 패자일 수도 있고, 승자인 경마 기수일 수도 있다. 어쩌면 이 글을 쓰는 필자일 수도, 삶의 경쟁에서 뒤처졌다고 생각하며 고통받는 어느 독자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