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톡방을 들여다본다. 지인들이 보내준 따뜻한 새해인사 카드가 줄줄이 펼쳐진다. 새로움이 쌔록한 카드가 있는가 하면 조금 진부한 것도 있고 깜찍하고 발랄한 것도 있다. 　 그녀는 지인이 보내준 카드로 상대의 성격을 맞추어본다. 그 카드를 선택한 상대의 성격이 맞아떨어진다. 그런 생각 때문에 가뜩이나 인간관계에 폐쇄적인 그녀는 누구에게도 카드를 보낼 수 없다. 새해인사로 전화할 수도 없다. 그저 머릿속에 상대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그가 오랜 병고에서 치유되었으면, 그 가정이 좀 잘 살게 되었으면, 위기를 맞은 그 부부가 사랑으로 회복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더구나 그녀 자신마저 남은 생에 대한 위기와 공포로 위축되어 주변을 돌아볼 기력조차 없었다.　 그녀는 카드 하나를 오래 들여다보고 글귀를 읊조린다.　 　내가 새로워지지 않으면 새해를 새해로 맞을 수 없다. 　 구상 시인의 시 `새해`의 첫 구절을 정갈하게 쓴 카드이다. 그녀는 그만 숙연해진다. 내가 새로워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말일까. 　 눈만 뜨면 몰려오는 염려와 병든 육체의 고통과 허망하게 지나가는 시간과 죽음에 대한 공포만이 가득하였기에 새 날, 새 마음은 먼 하늘을 나는 새에게나 해당하는 말이라고 그녀는 생각한다. 　 늘 무거운 짐이 자신의 생을 짓누르고 있었다. 남편이 켜두고 간 텔레비전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그렇지 않아도 세상이 시끄러워서 귀어한 그녀에게 국론의 분열, 경제 위기, 인구 감소, 인간의 타락, 등의 소식이 끔찍하게 들렸다. 그녀는 뉴스를 계속 보고 있으면 죽도록 일하는 아들이 자동적으로 떠올랐고, 그의 미래가 불안했다. 그러면 심장 박동이 빨라졌고 머리가 아파왔다. 　 그녀는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껐다. 똑, 소리 하나로 집안이 고요해진다. 그렇게 똑, 하는 소리 하나로 세상이 조용해질 수 있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녀는 핸드폰을 들고 집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어쨌든 살고 싶었다. 살아남고 싶었다. 그때 사데크 헤다야트가 쓴 `눈먼 올빼미`의 한 문장이 떠올랐는데, 그것은 생계 때문에 시를 포기한 그녀의 심연을 흔들었다. 　　 ―비참함과 고통만이 지배하는 이 비루한 세상에서 단 한번 한 줄기 햇살이 내 삶에 비춰 들어온 적이 있었다. 　　 그때가 언제인가. 그녀가 시를 쓸 때였다. 　 ―나는 단지 내 그림자를 위해 이글을 쓴다. 아, 사랑과 성교와 결혼과 죽음에 관한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있는가! 그 어느 것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잘 구성된 줄거리와 멋진 문장들은 정말이지 구토가 난다.　이 헤다야트의 말이 마치 그녀 자신이 오래도록 해 온 말 같다. 그녀는 이어지는 생각에 골몰하면서 집 뒤의 비탈을 넘어 산에 오른다. 헤다야트는 이렇게 말했다. 누워있는 자에게 시간은 무의미하다. 내 방은 내 존재의 무덤, 내 마음의 무덤이었다. 나는 언제나 부패해 가는 상태에, 점진적으로 해체되어 가는 상태에 있었다. 속물, 세상 사람들과 동떨어져 있으면서도 나 자신 역시 그들과 유사한다는 인식, 신체적 욕구라는 그 유사성이 가장 고통스러웠다. 　그녀 자신도 그랬다. 자신과 세상 사람들이 유사하다는 사실이 고통스러웠다. 토막 난 `눈먼 올빼미`의 문장이 그녀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새가 있다. 이 새는 바닷물을 마시고 사는 새인데, 어느 날 바닷물이 말라버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여 물만 쳐다보다가 갈증으로 죽었다고 전한다. 부티마르 때문에 그녀의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 듯하다. 　뒷산 정상에 오른 그녀는 마을의 지붕 너머로 펼쳐진 바다를 바라본다. 바로 가까인 듯 고깃배에서 뽕짝노래가 울려 퍼진다. 청명한 가을 같은 하늘빛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하늘은 층층 구름결로 파도치듯 다가온다. 그녀는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찍는다. 봉오리를 맺은 매화가지가 하늘을 가로지른다. 거대한 바위가 그녀를 맞이한다. 고사목의 연약한 줄기가 바위를 받치고 있다. 연약한 인간의 모습이다. 살았을까? 아마도 땅속 깊이 뻗어나간 뿌리가 그 줄기를 떠받쳐 주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고통의 근원을 생각한다. 세상 불안과 죽음의 위기에서 건져줄 이, 잃어버렸던 신의 이름을 가만히 불러본다. 그녀의 입에서 애국가가 흘러나온다.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그녀도 새로워지고 싶었다. 올해는 생계 때문에 버린 시를 다시 쓰겠다고 다짐하는 그녀의 새로운 날, 경자년 둘째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