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권(三權)이 모두 왕의 손아귀에 있던 조선시대에도 사법권을 어느 한 사람이나 일 개 기관에 맡기지는 않았던 것 같다. 죄인을 잡아들이고 취조하는 일을 담당했던 것으로 보이는 의금부(義禁府), 사회적 풍습과 윤리 기강을 세우며 벼슬아치(고위 공직자)들의 비위를 감찰하던 사헌부(司憲府)가 있었고, 그 위로 오늘날의 법무부에 해당하는 형조(刑曹)가 국법을 관장하고 있었으니, 그 옛날 왕조시대라고 해도 요즘과 크게 다를 바 없이, 나라의 사법권력을 제도적으로 분산시켜 놓음은 물론 또 그 권력을 이중으로 감시하고, 왕에게 진언(進言)하는 사간원(司諫院)이라는 언론기관까지 두어, 왕의 실정을 감시하도록 하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닌가?　 한반도가 일제치하에서는 벗어난 듯 했지만, 이 땅에 두 개의 다른 정부가 탄생하였으니, 북쪽에는 대륙을 사대(事大)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남쪽에는 미국과 일본을 사대(事大)하는 `대한민국`이 만들어 졌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전혀 다른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가진 두 정부가 국호나 헌법에는 공히 `민주주의 공화국`임을 표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국호나 헌법이야 어떻게 되었든, 북쪽은 해방이후 지금까지 왕조와 전혀 다름이 없는 일가(一家) 지배체제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논외로 하고, 남쪽은 북쪽에 비해 국가수반이 열 번도 더 바뀌는 정치적 격동기를 거쳐 오면서 표면적인 민주화에는 성공한 듯이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동안 간과하고 있었던 사실 하나. 참 된 민주주의 사회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누가 정권을 잡는가? 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국가 권력이 온전히 국민의 것인가? 에 있다는 사실이다. 그간 숱한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피를 흘리고, 추위에 떨며 쟁취한 민주주의 권력이 이제 알고 보니 민주주의 탄압의 주구(走狗) 역할만 해온 것으로 의심되는 특정한 무리들의 것이 되어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왕권시대에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 같은 무소불위 권력의 실체, 그들은 과연 누구일까? 　 최고 권력을 보좌해야 하는 차 서열의 권력이 지나치게 비대해지면 발생하는 부작용이 다름 아닌 `국정농단`인데, 그 대표적 사례로 자주 인용되는 사건이 중국 후한 말 십상시(十常侍 )의 난(亂)이라는 게 있다. 그런데 최근의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해 보이는 사례가 발생되어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 사태까지 있었지만, 내 눈에는 아직도 한국판 상시(常侍)들의 난(亂)이 완전히 평정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임명된 권력이 국민에 의해 직접 피선된 권력을 누르려는 행위는 주권자에 대한 도전이자 하극상이다. 예나 지금이나 농단 세력들은 정의롭고 현명한 지도자나 상급자를 절대로 선호하지 않으며, 멍청한 군주와 몽매(蒙昧)한 백성들이 그들의 좋은 토양임을 안다. 그리고 불공정의 수혜자인 기득권과 사악한 언론이야말로 그들의 원군이니, 마치 육식동물들이 모여 초식동물을 사냥하는 듯한 형국이 아닌가? 육식동물 하이에나의 무기는 강한 턱뼈와 날카로운 이빨 그리고 끈질긴 지구력과 협업 정신이며, 그들은 늘 초식동물들의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무리가 흩어질 때를 기다린다. 그에 반해 연약한 초식동물들은 거대한 무리 짓기가 유일한 방어전략일 수밖에 없는데, 초식동물들에게 적전 분열과 대오 이탈은 곧 죽음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모든 권력은 주권자의 것이다. 주권자인 국민이 부여한 권력은 오직 국민만이 그 권력을 회수할 수 있을 뿐, 그 어떤 자도 주권자가 부여한 권력을 넘보거나 농단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미 모습을 들어 낸 씹상시(발음주의)와 그 조력자들! 세상에는 되돌려 질 수 있는 일과 되돌려 질 수 없는 일이 있기 마련인데, 몰아치는 삭풍한설(朔風寒雪)을 어이하고 썩은 둥치에서 매화꽃이 피기를 기다리는가? 하명(下命)은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명을 이름인데, 죄 없는 사람을 무단히 잡아 가두라는 하명이 아니라면 상명(上命)과 하복(下服)은 민주주의 정부에서도 당연한 위계일 뿐이니, 하명을 따질 일이 아니라 무고(誣告) 여부를 먼저 살피는 것이 국가 사법기관의 본연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