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집생활을 하는 모든 동물들에게 서열이 있듯이 사람이 만든 조직에도 서열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사회 조직의 가장 기본 구성단위로 볼 수 있는 가정에도 가장(家長)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시대와 지역에 따른 문화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가족이라는 구성원들의 안위와 생계 책임이 큰 남편이 `가장`이 되고, 남편을 보좌하는 아내가 있으며, 아래로 자녀들이 있는데, 그 자녀들 사이에도 먼저 태어난 순으로 하여 자연스럽게 서열이 형성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니까 가족단위의 가정을 최소 단위조직이라 한다면, 이러한 세포조직들이 무수히 모여 만들어진 거대한 조직체가 다름 아닌 국가라는 것인데, 규모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조직의 기본 구성 원리는 별반 다르지 않아서, 조직 내 각자의 역할과 함께 서열의 최 정점에 있는 사람 즉, 우두머리의 역할이 그 조직 구성원의 운명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지 않을 수 없다. 일 개 가정을 예로 들더라도, 가장이 가족에 대한 통솔력을 잃게 되면 그 가정사가 난항을 겪게 되는 것은 당연한데 하물며 나랏일임에랴… 일 예로, 가족 구성원들의 운명을 결정할 중대사에 남편과 아내가 정 반대의 의견을 가지고 대립하고, 자식들마저 편을 갈라 찬반(贊反)이 엇갈리면 가장은 어떻게 처신해야 옳을까? 이런 경우, 집이 무너져 내리려 하는데도 가족들의 합의가 있을 때까지 기다리겠다거나, 반대가 있으니 움직이지 않겠다하면, 그것은 민주적인 행동이 되고, 가족들의 멱살을 잡고라도 밖으로 끌어내면 그는 독재자가 되는 것일까? 위임된 권력을 사유화 하는 자, 제한된 권한을 오남용하는 자를 우리는 독재자라 한다. 그러나 위임해준 권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도 무능한 자가 되고, 허용된 범위의 권한을 써야할 때 쓰지 않으면 그것 역시 직무유기가 될 수 있다. 권력이란, 주인이 채용된 일꾼에게 내어 준 연장과 같은 것인데, 톱은 목재를 자르는데 쓰라는 것이고, 도끼는 썩은 나무 둥치를 찍어내는데 쓰라는 것이 아닌가? 식구들이 서로 의견이 다르다 하여 편을 갈라 싸우고, 가장을 능멸하여 권위가 서지 않으니, 가장이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중구난방의 집안을 우리는 흔히 `콩가루집안`이라고 한다. 물론 위엄과 위력으로만 제가(齊家)하려는 가부장 문화가 이 시대에 당키야 하랴만, 전체 가정의 평화와 안위를 위해서라면 읍참마속(泣斬馬謖)과 같은 고통도 감수해야 하고, 때로는 추상같은 위력도 행사할 수 있는 가장의 결단이 결코 민주주의에 반하지 않음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들은 `이게 나라냐?` 하면서 광장에 모여든 것이 아닌가? 그런데 왜 아직도 국민들은 여전히 `이게 나라냐?` 라는 말들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일 못하는 일꾼들에게 서로 연장만 바꾸어 잡으라는 것이, 그 많은 국민들의 뜻은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 전제군주나 파시스트 들은 그들 자신이 곧 법이었으며 원칙이었다. 때문에 권력의 정점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수직적인 권력구조가 형성될 수밖에 없고, 하극상(下剋上) 같은 일은 윤리의 문제를 떠나 체제에 대한 도전이요 반역으로 취급되어 진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에서의 하극상은 법률에 앞선 윤리적 문제로 보여 질 수도 있는 것인데, 현저히 윤리가 무너지고 정상적인 판단력을 상실한 상급자의 불법 부당한 지시에 저항하는 것을 오히려 합법으로 인정하는 이유는, 인간의 이성에 따른 천부의 인권보다 더 상위의 부여된 권력이 존재할 수 없다는 민주주의 기본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서열이란, 개인이 가진 인권의 차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맡은 바 직무상의 차등과 장유유서(長幼有序) 따위의 윤리적 서열의식을 함의(含意)하는 것으로, 서열과 민주주의가 결코 배치되는 개념이 아님을 이해하면 좋겠다. 따라서 모든 조직의 기본 근간인 서열을 무시하고, 나라의 위정체계를 콩가루집안으로 만들며, 스스로 전횡을 일삼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국민 위의 서열이나 권력이 없다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어야 할 때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