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경주시 서면 심곡지에는 매우 의미 있는 모임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심곡지를 설계한 고 강상회씨의 자손과 강씨 집안과의 추억에 얽힌 건천, 아화 출신의 원로모임이었다. 이 모임은 정기적인 모임이 아니다. 문득 강씨 집안의 추억이 떠오른 이가 소위 ‘번개모임’을 주선한 것이다. 모인 이들은 대부분 80대를 넘긴 원로들이었다. 서혜은(86·서울 양문교회 원로목사), 김종수(84·재미동포), 석진환(84·전 경북고 교장), 안경조(83·전 서울 가톨릭대학교 교수), 조도희(83·전 공주대학교 교수)씨 등이 그들이다. 그리고 고 강상회씨의 자손들도 자리를 함께 했다. 양병민(89·둘째 사위), 김상락(83·막내사위), 강정혜(80·막내딸), 양재령(62·외손녀·화가), 이광원(63·양재령씨 남편·전 부산신용재단 본부장), 이경인(56·외손녀·피아니스트)씨 등이 자신들의 집안을 추억하는 이들과 함께 했다. 서혜은 목사는 “강씨 집안은 항상 집안 대문이 열려 있어 그분의 자녀들 또래들에게 늘 따뜻한 정을 베푸셨다”며 “넉넉한 살림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찾아오는 이들에게 한 번도 인색하지 않으셨고 언제나 따뜻한 밥상을 내오셨다”고 회고했다. 김종수씨는 “강씨의 부인 김동필 여사는 마을 청년들을 자식과 같이 대해주셨다”며 “고등학교 시절 주말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들르면 1주일 생활할 식량과 물건들을 마치 어머니처럼 챙겨주시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언젠가 그분의 사위가 출장을 갔을 때 막 집을 떠났는데도 아랫목 이불 밑에 사위를 위한 밥을 묻어두셨다”며 “방금 떠났는데 밥을 왜 묻어두느냐고 물었더니 언제 무슨 일이 생겨 돌아올지 모르는데, 먼길 떠나는 사람을 위해 언제나 준비해 둬야 하는 것 아니냐며 오히려 반문하셨다”고 술회했다. 석진환 전 교장은 “강씨가 설계한 심곡저수지는 멀리 동방에까지 농사를 짓는 물을 댈 만큼 대규모 저수지였다”며 “지금은 이 지역의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어 관광 자원으로 개발할 필요가 있으며 그분의 업적을 기리는 흔적이라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둘째 사위 양병민씨는 “어르신들의 인심이 워낙 후해서 동네 누구나 칭송했지만 정작 집안살림은 그리 넉넉하지 않은 편이었다”며 “그러나 그렇게 베풀고 사셨으니 우리 자손들이 모두 평안하게 살 수 있는 복을 누렸다”고 말했다. 이날 모임에서는 외손녀인 화가 양재령씨는 외조부모님의 인심을 떠올리게 할만큼 푸짐한 음식을 손수 준비해 와 손님들에게 대접했고 피아니스트 이경인씨는 오카리나를 들고 와 즉석 연주회를 펼치기도 했다. 김종수씨는 “강씨 집안의 이야기는 어려운 시절었지만 오히려 두터웠던 마을 어르신의 인심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현대에 메말라버린 이웃간 정에 던지는 메시지가 크다”며 “우리 세대가 가난과 고통의 시절을 겪었지만 우리 민족의 정서인 뜨거운 정이 현대사회에서 다시 살아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