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바라나시의 골목길은 수백년 된 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바라나시를 방문하는 여행자들은 대부분 그 골목길을 걷기 위해 찾아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고 낡은 집들은 레스토랑으로, 기념품 가게로, 찻집으로 개조해 여행자들을 기다리고 규모가 큰 집들은 게스트하우스로 변했다. 자동차가 다닐 수 없는 것은 너무 당연하고 심지어 사이클릭샤도 통과하지 못하는 좁은 길로 여행자들은 차박차박 걷는다. 4000년이 넘은 역사를 가진 도시의 문화를 만끽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서민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숨쉬는 재미는 바라나시를 찾는 이들에게 최고의 선물이다. 골목이 살아있는 도시는 관광도시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 바라나시가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골목도시이긴 하지만 모로코의 페스, 쉐프샤우엔도 굉장하다. 이슬람 문화권의 구도심을 의미하는 메디나를 대표하는 이 도시들은 각자의 색을 가지고 세계의 여행자들을 매혹시킨다. 페스는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집들과 담장이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고 쉐프샤우엔은 유대인들이 마을 전체를 온통 파란색으로 칠해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모로코를 찾는 여행자들은 사하라 사막보다 이 두 도시의 골목길을 어슬렁거리는 것을 더 좋아한다. 물의 도시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뒷골목은 어떤가. 모두가 곤돌라를 타고 운하 위를 미끄러지는 재미에 빠졌다가 운하의 이면 골목길에 즐비한 유럽의 중세 골목길에 넋을 놓는다. 수백년 가업을 물려받은 장인들이 만드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공예품을 만지작거리며 지갑의 두께를 가늠해 보거나 베네치아만의 특별한 별미를 먹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불편함을 감수하는 재미는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에게도 골목은 있다. 서울의 북촌과 서촌이 있고 전주 한옥마을이 있다. 최근 뜨고 있는 목포의 만호동 골목길도 있고 가장 핫한 경주의 황리단길도 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이 콘텐츠가 상당한 경쟁력을 가진 것 같지만 사실은 아직 한참 멀었다. 예쁜 카페를 만들고 젊은이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해 놓기는 했지만 가장 중요한 역사성이 빠졌다. 혹 역사성이 담보된다 하더라도 그 역사를 설명한 스토히텔링이 없다. 냉혹하게 얘기한다면 흉내만 내다가 그친 형국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경주에는 쪽샘길이 있었다. 그 길은 수백년간 서민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면서 형성된 자연 한옥촌이었다. 색주가가 있었고 점집이 있었다. 손수레 하나가 겨우 지나갈 좁은 골목길에 제과점도 있었고 찐빵집, 참기름집, 방앗간이 있었다. 오랜 세월 그 자리에서 삶을 영위했던 사람들의 손금과 짜릇한 땀냄새가 스며들어 있었다. 그 길은 지금 사라져 버렸다. 대신 남아있는 황남동 한옥마을에 황리단길이라는 뜬금없는 길이 생겼다. 그곳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모두 뜨내기 상인들이다. 세월의 흔적이 없고 그들이 만든 이야기의 나이테가 없다. 당장은 특이할지 몰라도 날카로운 눈을 가진 여행자라면 금방 눈치챈다. 그래서는 경쟁력을 가질 수가 없다. 안동의 하회마을이 오랜 세월 꾸준하게 여행자들이 몰리는 이유는 바로 전통성이라는 최대의 무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북이 미래먹거리를 구하기 위해서는 누가 뭐래도 문화관광산업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 최근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서원` 9곳 가운데 4곳이 경북에 몰려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 안 된다. 경북이 가장 경쟁력을 갖는 것은 문화적 전통과 역사성이다. 이 자원을 어떻게 포장하고 홍보하느냐에 따라 경북의 미래가 좌우된다고 해도 모자라지 않는 말이다. 다시 경주의 골목을 생각한다. 황오동 관사마을을 대대적으로 재생한다는 말이 들린다. 그곳이 현재 남아 있는 골목 가운데 가장 경주다운 곳이다. 최소한 수십년을 한 자리에서 생생한 삶을 영위하던 주민들이 있는 곳이다. 여기에 재생사업이랍시고 터무니없는 분칠을 해서는 안 된다. 외지인이 밀고 들어와 영문도 모른 채 카페가 생기고 식당이 생기는 혼선을 빚어서는 안 된다. 현지인들의 소박한 삶의 모습을 찬찬하게 둘러보는 것이 최근 여행의 트렌드다. 현지인들이 자그마한 가게를 열고 열악한 삶을 보상받을 수 있도록 배려를 해야 한다. 황리단길이나 전주 한옥마을처럼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정든 골목길을 떠나는 시민의 뒷모습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제대로 보존된 골목자원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위대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