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행복을 위해 산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사람이 행복을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삶을 위해 행복의 가능성이 제시된 것일 뿐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생동안 그 가능성에 매달려 보지만, 끝내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현실이다. 어떤 존재에 의해 피조되었던간에 모든 생명은 늘 삶이 강요되도록 프로그래밍 된 개체인 바, 삶의 이유를 따지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생명도 없을 것이며 죽기 싫다하여 죽지 않을 생명도 없기 때문이다. 파도는 원래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만, 바람이 불면 일어나고 바람이 자면 가라앉는다. 생명이란 것도 호수의 파도처럼 바람따라 잠시 일어났다가 가라앉을 수밖에 없는 것인데, 거기에 무슨 대단한 의미들을 찾으려 하는지? 호수의 물은 잔 물결 큰 물결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호수는 그대로 호수인 것처럼, 내가 살아있든 죽었든 자연은 그대로일 뿐이다. 행복은 추구하여 얻어지지 않고 다만 집착을 버리는 것으로 족하고, 삶은 의지 속에 있지 않고 타성에 맡기면 그만일 텐데. 오늘도 세 번 먹이를 먹고, 언제나처럼 잠자리에 든다. 무슨 꿈들이 그리 많고, 또 무슨 흉과 음모들은 그리 많은지 모르지만, 나는 가끔 아침에, 밤새 나의 체온으로 데워진 이불 속의 온기가 좋아, 그만 다시는 귀찮게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그래서 내가 간밤의 잠자리에서 다시 몸을 일으키는 것은 타성인가 의지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기도 한다. 요즘 하도 시끄러워서 하는 소리인데, 무슨 꿈이 되었든 꿈을 꾸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꿈속의 괴물은 싸워서 이겨야 하는 것이 아니고, 잠에서 깨어나기만 하면 사라진다는 것을. 악몽은 나쁜 꿈이지만 자기 머리속에서 만들어진 환영일테니, 헛된 생각을 멈추면 악몽도 사라지겠지 아마. 끓는 물에서 피어오른 수증기는 안개가 되어 흩어지지만, 하늘에서 떨어진 물은 낮은 곳으로 그리고 빈자리를 찾아 모여든다. 마찬가지로 행복은 들끓는 탐욕속에 머물 곳이 없고, 낮은 곳으로 그리고 비워진 마음을 찾아든다. 삶이 죽음의 원인이듯이, 빼앗음이 빼앗김의 원인이 되며, 성공이 실패의 원인이 되고, 사랑이 미움의 원인이 되며, 신뢰가 불신의 원인이 되고, 행복을 추구함이 불행의 원인이 된다. 무슨 말 장난인가 하시겠지만, 원인과 결과는 분리되지 않고, 극은 극과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이 진리가 아닐까? 내가 아는 것을 말했지만, 모든 사람이 다 아는 사실이기도 하다. 누가 무엇을 추구하든 그것은 행복을 위한 것일 텐데, 이미 주지된 바와 같이 행복은 추구하여 얻어지는 것도 아니고 우리의 삶에 원래 어떤 목적이 설정된 바 없으며, 다만 삶이 이어지고 종(種)이 보존되도록 설계된 생명 중의 하나가 사람일 뿐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그냥 제 할 일이나 하면서 주어진 여건대로 살아가면 될 일인데, 공연히 사랑과 증오를 만들고, 성공과 실패의 기준을 만들고, 행복과 불행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웃고 울고 하는 괴상망측한 행동을 하는 생명체가 바로 인간이 아닌지 모르겠다. 나는 인간을 제외한 다른 생명체가 어떤 신호의 소리를 내는 것은 보았지만, 울거나 웃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라고? 그런데 내가 보기엔 감정이 인간만의 것은 아닌 것 같고, 많은 동물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보았고, 때로는 화를 내는 것도 보았다. 그러나 동물이 인간과 다른 점은, 그들은 삶의 이유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인간이라는 생명체로 태어난 것은 축복이자 저주일 수가 있겠다. 어쩌면 질문할 능력을 가졌으나 질문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에 이를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수행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