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호 아침단상] 샌드위치 신세 된 한국

중국의 사드 보복이 안 끝난 와중에 이번엔 일본이 한국에 대해 경제보복조치를 단행했다. 일본은 지난 1일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생산에 필수적인 소재들에 대한 수출규제조치를 발표했다. 일본기업이 이들 제품을 한국으로 수출하려면 앞으로 일본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와 관련 2일 일본의 조치가 우리 대법원의 강제 징용 일본 기업 배상판결에 대한 경제보복 조치라며 국제 무역기구에 제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부는 장기적으로 소재 산업 국산화를 강도 높게 추진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WTO제소를 해도 결과가 나오기까지 2~3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 법적인 대응은 당장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현 시점에서는 바람직한 해결책이 아닌 것 같다. 아베 총리는 이번 조치는 한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취한 점임을 분명히 했다. 다시 말해 대 법원의 강제징용 판결과 위안부 합의 파기에 대한 보복 조치임을 부인하지 않은 것이다. 일본과 우리 정부는 그동안 국민 모두가 만족할 만한 관계를 유지해온 것은 아니지만 일본이 이렇게 드러내놓고 한국을 상대로 경제보복조치를 취한 것은 처음 있는 일로 여겨진다.  그만큼 지금의 한일 관계는 과거에 보지 못한 최악의 수준으로 곤두박질친 상황이다. 중국이 G2로 부상 했지만 일본은 여전히 경제대국이다. 반도체와 스마트폰은 우리 기업에 선두자리를 내줬지만 수 십년간 이어져온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한 소재 산업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일본은 반도체 핵심소재에 대한 수출규제에 이어 추가로 다른 경제적 보복조치도 확대할 것이라고 한다. 경제강국인 일본의 보복 조치가 이어진다면 우리 기업들의 피해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예삿일이 아니다. 일본 내에서도 이번 조치로 자국 기업의 피해가 우려된다며 아베 정부의 경제보복 조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일본기업이 생산하고 있는 소재의 최대 수요업체가 한국 기업인 이상 한국기업이 장기적으로 수입처를 바꾸는 등 탈 일본화가 진행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일본기업에 돌아가기 때문에 서로 좋을게 없다는 이야기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 한·일관계는 순탄치 못했던 게 사실이다. 특히 출범 초기 지난 정부가 합의해 설립한 화해와 치유재단마저 해산하면서 한·일 관계가 껄끄러울 것으로 예상됐었다. 입장을 바꿔 양국가의 정상끼리 합의한 사항을 정권이 바뀌었다고 얼마 되지도 않아 우리 상대국이 합의문을 ㅤ찢어버린다면 어떤 마음이 들겠는가. 우리 정부가 좀 더 신중하게 접근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아무런 대안없이 재단부터 해산조치 한 것은 너무 성급한 것이 아니었나하는 것이다. 결국 한·일 정부간의 갈등은 고스란히 우리 민간기업의 피해로 돌아오고 있는 상황을 불렀다. 지금의 한·일 관계는 모든 대화의 통로가 막힌 듯 보인다. 과거에는 그래도 한·일 관계가 경색될 때 양쪽 인사들 중 소위 지한파나 지일파로 지칭되는 사람들이 비공식적 통로를 통해 중재자로 나섰다. 이들의 중재로 꼬인 실타래가 풀리고 두 나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 인적네트워크가 한·일 사이에 작동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2년 전 사드배치로 시작된 중국의 한국에 대한 보복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중국 관광객이 줄어들고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은 반한 몰이에 사업을 접는 일마저 빚어졌다. 이런 와중에 일본 정부까지 한국에 경제적 보복조치를 단행하고 나서니 한국은 중·일 양국에 끼인 샌드위치 신세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우리 외교는 어디서 뭘 하고 있었는지 묻고 싶다. 국정의 우선은 국익 지키기 일 텐데 과연 나라를 책임진 위정자들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