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양(大洋)을 항해하는 고급 여객선에는 반드시 유자격 선의(船醫)가 탑승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선원이 20명 내외인 상선(商船)은 아무리 대형선이라도 선의를 따로 승선시킬 수가 없기 때문에 보통 3등 항해사가 비상 의약품 정도를 관리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태평양을 항해하던 선박에서 한 선원이 심한 설사를 하자, 3등 항해사가 변비약을 처방했는데, 변비약을 너무 과하게 주었는지, 환자가 이번엔 변비를 호소하자, 3등 항해사는 나름 고민 끝에 설사약과 변비약을 50:50 으로 혼합하여 환자에게 주었다고 한다. 그 환자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치인이나 행정가들 중에도 그와 유사한 돌팔이들이 많아서, 사회적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없이 주먹구구식 처방전을 내놓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즉, 의료지식이 없는 사람이 올바른 처방을 할 수 없듯이, 어떤 사안에 대해 아무런 예비지식도 없는 사람들이 엉뚱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 관(官)제도 이대로 좋은가 라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산업이라고 해야 먹고사는 농사밖에 없던 옛날에야 글줄이나 읽은 양반들이 등과(登科), 벼슬자리 차고앉아 가렴주구(苛斂誅求)만 하지 않아도 다행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요즘은 워낙 경제구조도 복잡할 뿐만 아니라 개인이나 집단 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여,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에게 해당분야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경우가 많은 게 현실이다. 물론 요즘은 행정직 공무원뿐만 아니라 명색은 기술직 공무원도 없지는 않지만, 철(鐵)밥그릇 때문인지는 몰라도 민간에 비하면 턱없이 전문성이 부족한 게 사실로 보이고, 더구나 중요한 정책을 입안하고 관리해야 하는 정치인들은 대부분이 법조인 출신 내지 특정 관문 출신들이라, 이토록 다변화 된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풀어가기에는 해당 지식이 일천하여 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하다. 축구단의 감독은 축구 선수 출신이 한다. 그리고 배구 선수의 코치도 역시 배구 선수가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공무원들은 전문성과는 거의 무관한 순환보직을 하고 있으며, 정치인들 역시 딱히 전공(專攻) 불문하고 자리만 쫓아 순환한다. 그들이 어떤 관문을 통과했든, 그들이 어떤 스펙을 가지고 있든, 해당 사안에 대한 지식 없이 어떤 결정권만 가진다면 그게 바로 다름 아닌 돌팔이 처방전이 된다는 말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나라의 살림살이가 제대로 될 리 없고, 허구한날 예산 부족 타령이지만, 돈은 엉뚱한 곳에 몰아주고, 정작 써야 할 곳에는 쓸 돈이 없다. 그래서 어떤 똑똑한 정치인이 있어, 낭비되는 예산을 절약하거나 잘못 쓰일 돈을 바르게 쓰기라도 하면 오히려 비난의 공격을 받기 일쑤이다. 조그마한 중소기업에서조차도 사람을 함부로 뽑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경리를 볼 사람과, 마케팅을 할 사람, 또 생산설비를 가동시킬 사람, 기술개발을 하는 데 필요한 사람 등으로 각자의 전문성을 고려하여 채용하기 마련인데, 하물며 막중한 국가 살림을 맡겨야 할 사람들을, 지방의회든 국회든 거의 전문성과는 무관하게 그 대단한 스펙에다 또 요즘은 무슨 성비(性比)까지 맞춘다며 높은 가산점 제도까지 적용하여, 마치 제사떡 나누듯이 완전히 자질미달인 인간들이 정계로 진출, 코미디를 연출해내는 촌극도 비일비재하니, 주권자인 국민들이 이런 불합리함을 언제까지 두고만 보아야 하는가? 사람들은 투표행위 자체만으로 주권행사를 한 것으로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 그것은 음험한 농부가 미리 골라놓은 벌레 먹은 과일 중의 선택, 그러니까 최선이나 차선은 빠져 있고, 항상 최악이나 차악밖에 선택할 수 없도록 되어 있는 구조인데, 그것을 과연 주권행사라 할 수 있겠는가? 그 얘기다. 따라서 나는 구시대 정치제도의 유물로 보이는 정당정치를 당장은 어쩌지 못한다 하더라도, 정치인은 주권자에 의해 그 전문성과 자질이 검정되어 마땅하고, 검정된 후보들을 다시 주권자들이 투표하여 선출할 수 있어야 함은 물론 또 소환까지 할 수 있어야 비로소 완성된 민주주의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