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슬을 마다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도 정부의 장·차관을 비롯한 고위직 자리라면 자다가도 일어나 달려가 받을 것이다. 벼슬길에 나서면 사람의 대접이 달라진다. 공공기관의 장만 되어도 엄청난 대우를 받는다. 수 백 명에서 수천 명의 부하 직원을 거느리며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 기관장의 인사 대상이 되는 이들은 좋은 자리에 가기 위해 혹은 눈에 들기 위해 애쓸 것이다. 억대 단위의 연봉은 기본이고 판공비에 고급차량을 제공 받고 멋진 사무실에서 비서들의 시중을 받아가며 일하는 기분은 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공공기관의 장만 되어도 이 정도인데 장·차관 등 그 이상의 벼슬은 더 말 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더 큰 권한에 수시로 국가를 대표해 외국을 드나들며 온갖 대접을 다 받으니 되기만 된다면 개인과 가문의 영광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모든 것도 무사히 관직을 마치지 못하거나 관직을 그만둔 뒤 재임 중 문제로 형사처벌 받는다면 상황은 급반전된다. 그야말로 아니 한 만 못한 꼴이 되는 셈이다. 정권이 바뀌고 박근혜 정부 시절 고위직에 있었던 인사들이 줄줄이 포승줄에 묶여 법원과 검찰을 드나드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국정원장, 비서실장, 경제부총리, 청와대 수석, 경찰청장 등 한때 이 나라를 이끌던 핵심인사들이 정권이 바뀐 후 조사를 받은 뒤 여러 가지 혐의로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일부는 하급심의 판결이 억울하다고 생각해 상급심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도 있다. 이분들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만약 관직을 제의받았을 때 선뜻 받기보다 신중히 생각해 고사했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말이다. 그리고 관직을 맡았더라도 법에 어긋난 일이나 나중에 문제 소지가 있을 수 있는 일은 단호히 `노`라고 했더라면 어땠을까. 아무리 관행적으로 해오던 일이라도 심사숙고해 처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장관 1~2년하고 난 뒤 가는 길이 감옥행이라면 어느 누가 그런 장관 자리를 얼씨구나 하고 받겠는가. 옛날 선비들 중에는 임금이 수차례 벼슬을 내려도 이런저런 이유로 고사하는 분들이 많았다고 한다. 임금이 하사하는 벼슬을 고사했다가 자칫 괘씸죄에 걸려 목숨까지 위태로울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고향으로 낙향한 퇴계 이황 선생은 70여 차례나 임금의 부름을 받았지만 사양했다고 한다. 지금이나 그 당시나 모두 벼슬을 못해 안달일 텐데도 임금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니 놀랄 따름이다. 퇴계 선생은 잠시 몸담았던 벼슬길이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그런 결단을 했을지 모른다. 그 당시의 벼슬길도 안온한 길은 아니다. 언제 간사한 자들의 탄핵을 받아 벼슬 끈이 떨어지고 귀양을 가거나 최악의 경우 사약을 받고 억울하게 목숨을 잃을 수 도 있는 위험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장차관이나 고위공직자의 임명 소식을 들어보면 고사하거나 사양했다는 이야기는 적은 것 같다. 살아온 과정이나 자질이 일반 국민보다 나을 것 없는 사람들도 야당에서 스스로 물러나라고 아무리 몰아붙여도 눈 하나 까딱 않고 버티다 임명장을 받는 모습은 이제 너무 흔해 뉴스거리도 못 되는 것 같다. 지금 정권이 바뀌고 구속된 인사들도 재직 중에는 누가 퇴임 후 법의 심판을 받고 자신이 영어의 몸이 되리라고 생각했겠는가. 아마 그랬더라면 한층 더 자신의 주변을 철저히 관리했을 것이다. 전 정권 인사들의 구속을 보면 대한민국에서 고위직을 지낸다는 것은 교도소 담장위를 걷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현 정권의 고위직 인사들은 전 정권 인사들이 겪고 있는 수난을 `강 건너 불 보듯` 할 것 아니라 `반면교사`로 삼는 게 공직자로서 올바른 처신이 아닐까.